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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장부까지 내놔야 할 판…"1급 기밀 유출땐 치명타"

[진퇴양난 K반도체]美, 보조금 신청 세부지침 공개

제조 소재·생산 첫해 판매가격 등

보조금 내세워 모든 영업비밀 요구

경쟁사로 새나가면 기업생존 위험

영업측면만 보면 안받는게 낫지만

美 몽니 우려에 기업들 결단 쉽잖아

정부 최소 가이드라인 설정해줘야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 전경. 사진 제공=삼성전자




미국 정부가 27일(현지 시간) 한국·대만 등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조건으로 반도체 원재료와 수율(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 가격 등의 정보까지 요구하자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업체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정보가 고스란히 공개되면 고객사와 가격 협상이 어려워질뿐더러 최악의 경우 기밀 정보가 미국 경쟁사에 흘러들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빌미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영업 측면만 생각하면 보조금 수급을 거절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이 경우 미국이 어떤 ‘몽니’를 부릴지 알 수 없어 섣불리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게 반도체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우리 기업들은 특히 수율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생존을 위협하는 과도한 압박으로 보고 있다. 수율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주요 지표로 특정 시설의 실제 수율은 사내에서도 1등급 영업기밀로 분류된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내용이 기업으로서는 공개되면 상당히 치명적인 기밀 정보”라며 “꼭 내야 한다고 강제한다면 기업들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에 들어가는 소재 및 화학품 비용, 생산 첫해 판매 가격 등을 모두 공개하라는 대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면 원가 정보를 낱낱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상무부는 정보 제출 방식을 엑셀로 한정하고 수치가 산출된 수식이나 과정을 파일에 남기라고 지시했다.

유재희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제조사 입장으로서는 정부나 고객사가 이런 정보를 알게 되면 가격 협상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 가격에 만드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 정도 값을 받느냐고 반박이 들어올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협상에서 ‘을’의 위치에 서게 되면 적정한 수준의 이익 확보, 신규 고객 확보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2일(현지 시간)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반도체 공급망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제공된 기업의 극비 경영 정보가 미국 내 경쟁사에 흘러들어갈 우려도 크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투자 보조금 등 각종 정책을 두고 ‘자국 기업 우대’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미국 전역에 66조 원에 가까운 거액을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마이크론은 첨단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앞다퉈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할 것 없이 매년 수십조 원씩을 들여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경쟁사로 수율 등의 중요 자료가 유입되면 공정한 경쟁이 교란되는 것은 물론 정보 노출 기업은 존폐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날이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을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이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의 강약과 주요 기술·소재·장비 정보를 틀어쥐게 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자국 기업에 유리한 반도체 산업 육성책과 집중 투자 정책을 짤 수 있다. 결국 보조금을 빌미로 자국 이외의 반도체 기업들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과도한 자국 이기주의가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는 2021년에도 매출과 수주 및 재고 현황, 고객 정보 등 사실상 경영 정보 일체를 요구하는 반도체 공급망 설문조사를 기업들에 강제했던 전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물론 대만 등 각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의 반발이 거세자 “정보 제출은 자발적 선택”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2년이 지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유 교수는 “명분은 중국의 반도체 사업을 틀어막겠다는 것이지만 저의는 이를 빌미로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목을 조여온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선을 넘은 미국 정부의 정보 제출 요구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잠재적인 대미 투자의 경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부적인 항목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기업 간 추후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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