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특허청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다. 평균 연령 54세, 평균 경력 24년, 석·박사 학위 보유율 83%라는 막강한 경험을 갖춘 ‘반도체 베테랑’ 30명이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선발 당시 지원자 상당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전·현직 근무자이거나 해외 기업 경력자들이었고 원서 접수 결과 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발된 인력은 반도체 분야의 상당한 실력자들이지만 특허심사관 역할은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선임 특허심사관과 함께 일을 배우게 된다.
이들의 반도체 특허 심사 실무 투입을 ‘실험’이라고 표현한 것은 처음 시도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성과에 따라 사업 확대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은 국내 우수한 반도체 인력들이 경쟁국으로 넘어가면서 발생하는 핵심 기술 유출을 막고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 심사 기간을 단축할 목적으로 이들을 선발했다. 현직자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최신 기술 동향에 정통한 반도체 분야 전문인력들이 선발되면서 민간의 우수 퇴직 인력을 공공 영역에 활용하려는 특허청의 새로운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이제 남은 절반의 성공은 반도체 전문임기제 심사관들이 얼마나 특허 심사 기간을 줄이고 특허 심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느냐다. 현재 국내에서 반도체 특허 심사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개월이다. 경쟁국인 일본이 10개월 이내에 처리한다는 점을 보면 기술 선점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하다. 특히 기술 경쟁이 격화되면서 특허 출원 신청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이번에 특허심사관이 된 50대 A 씨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으로 산업 현장은 매일매일이 전쟁터인데 심사만 2년 가까이 걸리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반도체 기술은 누가 선점하느냐가 중요한데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국가 반도체 산업 경쟁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특허청이 경쟁 국가들에 비해 2~3배 많은 특허 심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이번에 추가된 30명은 분명 가뭄 속 단비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 부족하다. 당초 특허청은 200명을 뽑으려고 했지만 여러 부처와의 조율 과정에서 67명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이번 30명이 내는 성과에 따라 나머지 37명의 선발 여부가 올해 결정된다. 또 2차전지와 바이오·인공지능(AI) 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첨단 기술 분야까지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 제도를 확대할지에 대한 판단도 이들의 성과에 달렸다. ‘인생 2막’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기로 한 반도체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 30명과 특허청의 실험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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