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700억 원의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아낸 쉰들러 그룹측이 현 회장에 대한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했다. 현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근 패소 확정된 주주대표소송의 손해배상금과 지연 이자 등을 현대무벡스(319400) 주식으로 대물변제하기로 한 것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5일 쉰들러 측 법률대리인은 현정은 회장과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017800)터 대표에 대한 집행문 부여를 대법원에 신청했다. 집행문은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것을 집행 대상자에게 알리는 문서다. 집행문을 받으면 현 회장의 재산을 압류하고 매각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상대방에게 내용증명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빚을 갚는 방식으로 협의하는 경우가 많아, 이례적으로 빠른 강제집행 신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 회장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에 내야 할 배상금 등 일부를 현대무벡스 주식으로 대물변제하기로 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현 회장은 이사회를 열어 회사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 1700억 원과 지연 이자에 대해 현대무벡스 주식 대물변제를 통해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는 현 회장이 보유했던 현대무벡스 주식 2475만 463주(지분 21.13%)를 약 863억 원에 추가 취득했다고 지난 6일 공시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무벡스 지분율은 기존 32%에서 53.13%로 늘어났다. 주식 취득 목적으로는 “손해배상금 관련 채권회수”라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는 2014년 1대 주주인 현 회장 등이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혔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 소송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주주 대표소송’으로서는 사상 최대 배상금을 물게 한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승소금액은 이자를 포함하면 2000억 원대 후반이며, 현 회장은 2심 승소 후인 2020년 1000억 원을 미리 갚은 바 있다. 현 회장이 갚을 금액은 약 600억~800억 원 정도 남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 회장은 나머지 손해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 등에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자산과 어머니인 김문희 여사 등 가족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해 현금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대부분의 자금을 경영권 방어 등에 사용해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 결국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편 7일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전날 대비 4.08% 상승한 3만 4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 회장이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는 등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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