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암호화폐 원화 거래소에 상장된 400여 개 코인 중 절반은 거래소 1곳에만 상장된 암호화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일부는 최근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시발점으로 지목된 ‘퓨리에버(PURE)’ 코인처럼 성장성을 검증받지 못했고 가격 변동성이 커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9일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대 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 수는 지난달 말 기준 총 426개(중복 제외)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4.2%에 달하는 231개 암호화폐는 5개 거래소 중 한 곳에만 상장된 ‘나 홀로 상장’ 코인이었다. 코인원이 68개로 가장 많았고 빗썸(64개), 업비트(53개), 코빗(29개), 고팍스(17개) 등 순이었다. 특히 코인원의 경우 전체 상장 암호화페(181개) 중 3분의 1이 다른 원화 거래소에는 없고 코인원에만 있는 암호화폐였다.
‘나 홀로 상장’ 코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거래소에서는 사업성·안정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사업성이 좋고 문제가 없는 암호화폐라면 다른 거래소들도 먼저 나서서 거래 지원(상장)을 검토할 것”이라며 “일부 거래소에서만 거래를 지원하고 거래량도 적은 코인이라면 투자 전에 한 번쯤은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일하게 거래를 지원하는 원화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경우 해당 코인에 투자한 투자자가 손실을 복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일례로 2019년 고팍스가 단독 상장한 암호화폐 ‘AI네트웍스(AIN)’는 2021년 3월 한때 개당 300원까지 가격이 치솟았지만 현재는 25원으로 떨어졌다. 유동성도 크게 떨어져 투자 주의 종목으로 지정된 상태로 언제 상장폐지가 돼도 이상하지 않은 코인으로 전락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022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국내 특정 사업자에서만 거래가 지원되는 단독 상장 가상자산의 34%는 시총 1억 원 이하의 소규모로 급격한 가격 변동 및 유동성 부족 등 시장 위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요 거래소에 나 홀로 상장된 코인들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이승형)는 7일 코인원 전 상장 담당 이사 전 모 씨에 대해 코인 상장 브로커로부터 ‘김치 코인(국내 발행 암호화폐)’을 상장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배임 수재)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청탁을 받은 코인에는 퓨리에버 코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빗썸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컴그룹이 발행한 ‘아로와나코인(ARW)’의 시세조작, 이른바 마켓메이킹(MM)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ARW가 빗썸에 상장한 직후 가격이 1000배 이상 폭등했기 때문이다. ARW는 빗썸 이외에 코인마켓거래소인 BTCEX·MEXC에도 상장돼 있지만 거래량의 96.8%가 빗썸에 집중돼 있다.
암호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입자와 거래량을 높여야 수수료 매출이 나오는데 대형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만 상장시키면 경쟁력이 없으니 다른 거래소에 없는 코인들을 무리해서 끌어모으게 된 것”이라며 “시장 자체가 어려워지다 보니 문제가 더 커진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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