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그룹 내 5개 계열사가 줄줄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지난해 이 회사들에 대출과 함께 1조 원의 담보를 설정해 둔 메리츠증권(008560)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하고 채권 회수에 착수했다. EOD는 금융사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할 것으로 보고 만기 전에 대출금을 회수하는 조치다. 메리츠증권이 보유한 담보에는 KH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알펜시아리조트도 포함돼 있어 메리츠가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7일 KH그룹에 EOD를 통보하고 KH그룹이 소유한 1000억 원대 자산에 1차로 담보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KH 필룩스(033180) 등 계열사가 보유한 인마크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 23호·24호 수익증권과 카일룸분양신탁, KH 강원개발 주식 등 담보물을 먼저 회수했다. 또 지난해 투자했던 KH 건설(226360) 전환사채(CB)에 풋옵션(원리금을 돌려 받을 권리)을 행사하고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5억 원을 돌려받는 등 현재까지 총 1000억 원이 넘는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KH그룹이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를 7115억 원에 인수할 때 총 3200억 원의 자금 조달을 책임졌다. 부동산 담보대출로 2200억 원을 투입하고 4개 상장사(IHQ(003560), KH 필룩스, KH 건설, KH 전자(111870)) CB 인수에 총 1000억 원을 3년 만기로 투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예금·신탁·보험 등을 포함해 전체 투자금의 3배에 달하는 1조 514억 원 이상의 담보를 설정했다.
그러나 최근 KH 필룩스와 KH 전자, KH 건설, 장원테크(174880), IHQ 등 KH그룹 내 5개 사가 일제히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하자 EOD를 발동하고 채권 회수에 나선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5일부터 7일까지 감사 과정에서 부적정 의견을 받은 이 회사들의 주식매매거래를 일제히 정지시켰다. 메리츠증권은 비교적 가치가 높고 회수가 용이한 자산에 먼저 담보권을 동원해 자금 회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메리츠증권이 7927억 원 규모로 설정해 둔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의 담보권까지 행사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원도가 수차례 매각을 시도한 끝에 지난해 KH그룹이 품에 안은 알펜시아리조트가 1년여 만에 새 주인을 맞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검찰이 KH의 알펜시아 입찰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메리츠의 담보권 행사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는 알펜시아리조트를 직접 인수해 운영하는데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며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알펜시아를 시장에서 매각해 현금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이 담보권 행사를 확대하면 최근 진행 중인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매매 거래에 여파가 있을 수 있다. 메리츠 측이 이번에 회수한 자산 중 인마크 23호·24호 펀드는 하얏트 호텔 지분에 투자하기 위해 2019년 인마크자산운용이 만든 상품이었다.
현재 하얏트를 소유한 인마크운용과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은 최근 블루코브자산운용에 약 7000억 원을 받고 매각하기로 계약을 완료했다. 다음 달 중 중도금을 납입하고 올해 말께 모든 거래를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었지만 메리츠가 담보권을 행사하면서 블루코브의 투자금 모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B 업계 관계자는 “블루코브운용이 하얏트 호텔 매매 거래 완료를 위해 투자자를 모집 중인 상황이지만 최근 검찰의 KH그룹 수사와 메리츠의 담보권 행사 등이 겹치면서 변수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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