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월에 이어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다. 금리 연속 동결은 금통위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반 만에 처음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초 예상대로 4% 초반으로 떨어진 데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인한 금융 불안,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경기 둔화 등 경제 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동결로써 금리 인상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 금통위는 11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4월부터 사상 최초로 7회 연속 금리를 인상하다가 올해 2월에서야 1년 만에 처음으로 동결을 선택했다. 이달까지 포함해 2회 연속 동결은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로 진입한 이후 처음이다.
기준금리 자체는 2008년 12월(4.00%)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정책금리(4.75~5.00%)와의 금리 격차도 역대 최대인 1.50%포인트로 유지됐다.
시장에서는 이번 금리 동결로 금통위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종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한은이 정책 목표로 삼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 4.2%로 2월(4.8%) 대비 큰 폭 하락한 것이 근거다. 앞서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저효과 등으로 상당 폭 낮아진 이후 연말까지 3% 초반 수준까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흐름이 한은 전망에 부합한다면 그동안의 금리 인상 파급 효과를 더 지켜보기 위해 당분간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두 번째 이유는 SVB 사태 이후 나타난 글로벌 은행 부문의 불안 확산과 이로 인한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이다. 2월 금통위 당시까지만 해도 이창용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최종금리를 3.75% 이상으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약 한 달 만에 금리 동결로 급격히 기운 것은 3월 SVB 사태 여파가 컸다는 분석이다. 미 연준도 향후 1회 인상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금통위로서도 한미 금리 역전 폭이 2%포인트까지 벌어질 부담을 덜었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1.50%포인트까지 벌어졌어도 환율이 크게 튀어 오르지 않은 점도 동결 배경으로 꼽힌다. 환율 변동성 자체는 커졌으나 상·하방 요인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다만 변수는 여전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자체는 큰 폭으로 하락했으나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4.0%로 전월 수준을 유지했다. 일부 금통위원들은 근원물가 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근원물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국가 협의체인 OPEC+의 깜짝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게 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튀어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아직 4%대인 소비자물가가 목표 수준인 2%에 안착됐다고 보기 이른 만큼 금리 연속 동결에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이 총재의 간담회에서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됐다는 해석을 경계하면서 물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발언이 예상된다. 금리 동결에 반대하면서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왔을지도 주목된다. 2월 금리 동결 결정 당시엔 조윤제 위원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