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재 정액제로 걷는 석유 수입 부과금을 정률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정액제는 유가의 등락과 관계 없이 단위당 일정한 금액을, 정률제는 유가에 비례하는 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올 들어 ‘세수 펑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석유 수입 부과금을 유가와 연동하면 유가 상승기에 부과금 수입과 함께 출하 가격에 붙는 유류세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기름 값이 오르면 물가 부담이 커지는 게 변수다.
1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발주한 ‘석유사업법상 부과금 및 행정 제재의 합리적 부과 수준 연구’ 용역에는 석유 수입 부과금 단가 산정 기준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석유 수입 부과금은 정유사 등 원유 수입·판매 업체에 부과되는 일종의 준조세로 현재 정부는 기업들이 원유·석유 제품을 수입할 때마다 가격과 상관없이 ℓ당 16원을 부과한다. 마찬가지로 발전용 천연가스에 톤당 3800원, 그 외 천연가스에 톤당 2만 4242원의 정액 부과금을 매긴다.
석유 수입 부과금 단가에 정률제를 적용하면 정부는 고유가 상황에서 더 많은 돈을 걷을 수 있다. 유가가 오르는 만큼 부과금 단가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올 들어 경기 침체로 법인세 등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유가가 하반기로 갈수록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은 정부의 석유 수입 부과금 정률제 변경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가뜩이나 최근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연합인 ‘OPEC+’가 추가 감산 계획을 발표한 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실제 지난달 배럴당 60달러대에 머물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최근 80달러대를 돌파했다.
정부는 추가 세수가 절실한 입장이다. 더구나 석유 수입 부과금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특별회계(에특회계)는 2019년 2조 원대의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2020년 이후 환경부의 친환경차 보급 지원 사업 등으로 세출 사업 예산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예산안에 편성된 에특회계 순 세입은 2조 6340억 원으로 순 세출 5조 7360억 원 대비 적자가 예상된다”며 “안정적인 회계 운영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석유 수입 부과금의 정률제 적용 등으로 석유제품 생산 단가가 올라 출하 가격이 상승하면 정부의 유류세 수입도 증가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유류세 완화 조치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부과금이 올라 석유제품의 출하 가격이 상승하고 유류세까지 늘어나면 소비자물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원유 가격의 3% 수준의 관세와 석유 수입 부과금, 정유사 유통 비용과 마진 등이 더해져 결정되기 때문에 석유 수입 부과금이 커지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5.2%에서 지난달 4.2%로 둔화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올 초 석유류 가격 하락세가 크게 작용했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세가 반영돼 석유류 가격이 다시 오를 경우 지난해와 같은 물가 급등세가 재연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석유 수입 부과금 규모를 늘리면 정유사들에 사실상 추가 세금을 물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야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일종의 횡재세를 징수하는 모양새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유사가 고유가 시기 이익을 많이 내자 영국 등 일부 산유국이 시행 중인 횡재세를 원유를 수입·정제해 마진을 내는 국내 정유 업계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에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17년 동안 변화가 없던 제도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일 뿐 제도 개편과 관련해 정해진 방향은 없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