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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HBM에 진심인 이유 <2>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SK하이닉스 HBM3 24GB. 사진제공=SK하이닉스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 하이엔드 테크 기사에서는 SK하이닉스(000660)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와 배경에 대해 다뤘죠.

아주 간략히 요약드리면 HBM은 1024개 도로를 뚫어서 D램 속 정보 이동을 극대화하는 콘셉트의 메모리 칩입니다. 32개 차선을 가진 기존 그래픽 D램보다 인공지능(AI)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죠. 오늘 이 기사를 보신 분이라면 아래 1편을 꼭 챙겨주세요.

이번 편에서는 말씀드렸던 대로 이런 HBM을 제조하는 핵심 기술은 어떤 것이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기술이 응용될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TSV, MR-MUF, 그리고 하이브리드 본딩입니다. TSV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TSV, 배선 '관통'이 키워드입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 사진제공=네이버 지도


HBM 기사가 나오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기술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TSV'죠. TSV는 'Through Silicon Via'의 줄임말입니다. 실리콘(으로 만든 칩)을 관통하는 배선, 즉 '실리콘관통전극'입니다.

표현 그대로 해석하면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보 출입구(I/O)인 핀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선으로 연결하는 리드 프레임같은 기존 배선 공정이 아니고요. 아예 칩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구멍을 뚫어버리고 이 속에 구리(Cu)처럼 전기 신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소재를 꽉꽉 채우는 것입니다. HBM의 I/O 수가 1024개라는 것은, TSV로 칩에 뚫어낸 구멍 수가 1024개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1024개 구멍을 내어서 만든 구리 배선, 그리고 각 배선을 또다른 D램 칩의 배선과 정교하게 연결해서 기다란 고속도로를 만드는 거죠. 아래 그림을 참고해주세요.

자, 그럼 여기서부터 또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칩 하나에 1024개 얇은 구멍을 뚫어낸 것까지는 좋은데 말이죠. 이 칩마다 있는 배선들을 어떻게 정교하게 연결해낸 걸까. 이 기술의 변천사를 봐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TC 본딩에서 한번 더 진화한 MR-MUF

자료=테크인사이츠, AMD


기본적으로 이 전기 신호 통로들을 연결하는 방법은 ‘납땜’입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한 TSV 통로들을 잇는 가교를 마이크로 범프라고 하는데요. 1024개의 배선 바깥에 살짝 구리 돌기(Cu Pillar)를 낸 후에, 이 돌기 가장 바깥쪽에 납(솔더)를 얹어서 납땜하는 방법을 씁니다. 고속도로로 따지면 각 도로를 연결하는 ‘인터체인지’, 분기점을 설치했다고 보시면 아주 적절합니다.

그러면 이 미세한 공정을 SK하이닉스는 어떻게 구현해내는 것일까. 약 2주 전 SK하이닉스가 낸 12층 HBM 자료를 잠깐 살펴볼까요. "어드밴스드 MR-MUF 기술을 통해 공정 효율성과 제품 성능 안정성을 강화했다".

MR-MUF(Mass Reflow-Molded UnderFill). 매스 리플로우-몰디드 언더필. 어려워 보이지만 차근차근 뜯어보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MR-MUF을 살펴보기 전에 D램 칩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 SK하이닉스가 바로 직전에 활용했던 방법과 MR-MUF 방법을 비교를 해봐야 합니다. 이른 바 'TC 본딩'이라는 공정입니다.



TC 본딩은 'ThermoCompression', 즉 열압착 방식입니다. 다리미판을 상상하면 쉽습니다. D램 칩 연결할 곳을 겹쳐서 놓은 뒤에, 달아오른(열·Thermo) 다리미로 위 쪽을 꾹 눌러서 붙이는 것(압·Compression) 방식과 유사합니다. 참고로 TC 본딩을 하는 장비는 우리나라 장비 업체인 한미반도체(042700)라는 회사가 잘합니다.

TC 본딩을 할 때에는 D램 칩 사이에 마치 샌드위치처럼 NCF라는 ‘절연 필름’을 덧댑니다. 일정 온도가 넘으면 이 필름이 사르르 녹으면서 범프 간 연결을 유도하고, 마치 본드처럼 두 개 칩이 고정될 수 있도록 하면서 칩 사이 공간도 메우죠(언더필·underfill이라고 합니다). 범프와 배선 외 전기 흐름을 통제하는 절연체 역할도 합니다. NCF에는 통상 접착제 소재로 많이 쓰이는 에폭시와 함께 아크릴 등 소재가 섞여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 엔지니어들은 이 공정에서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기계를 정교하게 조작해서 TC 본딩을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칩에 가하는 열과 압력을 1024개 범프에 일정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전기 신호 전달을 위한 1024개 배선 외에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하기 위해 칩 아래에 '더미 범프'라는 부수적 요소도 설치하거든요. 더미 범프까지 늘어나면서 물리적 에너지를 곳곳에 골고루 전달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또 칩 연결 전에 더 얇고 높이 쌓아 올리기 위해 D램 뒤쪽을 갈아내는 작업(그라인딩)도 하는데요. 이 때 조금이라도 균일하지 않은 두께로 갈아낸다면 칩 곳곳에 미치는 압력이 또 달라집니다. 불량률이 높아지죠. 게다가 TC 본딩 작업은 칩 하나하나에 압력을 주는 공정이라 한번에 많은 칩을 만들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합니다. 이제 SK하이닉스가 HBM에서 내세우는 MR-MUF(머프)가 등장합니다.

먼저 MR은 '매스 리플로'라는 방법인데요. ‘리플로(Reflow)’라는 납땜 방법은 마치 쿠키를 구울 때처럼 대형 오븐에 여러 개 칩을 한꺼번에 집어넣은 다음, 한증막같은 오븐 안에서 납이 녹으면서 때우는 방식입니다. 이름에 ‘매스’가 붙은 만큼 대량 양산에 상당히 유리합니다.

헬러인더스트리의 매스 리플로우용 장비. 오븐처럼 내부를 데워서 납땜하는 방식입니다. 한번에 여러 칩을 작업해서 생산성이 상당히 좋습니다. 사진제공=헬러인더스트리


사실 MR은 TC-본딩 전에 쓰던 '레거시(옛날)' 방식이었습니다. 배선 간 거리가 좁아질수록 납땜을 할 때 범프들끼리 서로 엉겨 붙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칩이 고열 때문에 휘어버리는 것이 통제하지 못할 수준까지 이르자 TC 본딩을 택했던 건데요. 최근 SK하이닉스는 매스 리플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소재를 개선해서 기존보다 가열하는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썼을 수도 있고요. 열을 가하는 대신 레이저를 칩에 번쩍 쏴서 공정 시간을 크게 단축한 공정도 개발됐다고 합니다.

아래가 몰디드 언더필에 관한 설명입니다. 캐필러리(뾱뾱이)로 칩 사이에 액체를 넣는 기존 언더필 방식에서 아예 몰딩까지 원스톱으로 해버리는 게 MUF 방식 특징입니다. 요약하면 MR-MUF는 우선 MR 오븐으로 칩을 한번 굽고, 그다음 마이크로 범프 사이사이는 물론 바깥 보호막까지 한번에 메운다고 보시면 쉽습니다. 사진제공=테크인사이츠, 파나소닉


이 MR 공정을 하는 이유가 바로 MUF(일명 머프)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TC 본딩이 NCF라는 필름을 중간에 끼워서 열과 압력으로 ‘샌드위치’ 시키는 방법이라면요. MUF는 칩을 일단 MR 방식으로 납땜을 하고 나서 말이죠. 칩 사이사이의 간극을 액체(실리카·에폭시 알갱이로 구성된 소재로 알려집니다)로 채우면서 단단하게 굳히는 '언더필' 작업과 동시에 ②이 칩을 보호하는 일종의 껍데기 마감 작업인 '몰딩'을 동시에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몰디드 언더필(MUF)라는 단어를 쓰죠.

납땜 공간 사이사이를 끈적한 액체로 채우는 작업이라 열과 압력이 각 범프에 미치지 못할 걱정을 안해도 되고요. 사실 기존에는 이 언더필 작업을 캐필러리라는 소위 ‘뾱뾱이’로 해왔는데요. 이 언더필과 함께 마감(몰딩) 작업까지 동시에 해버리니까 공정이 훨씬 간단해져 생산성이 올라가는 장점이 생겼죠. 이렇게 MR과 MUF를 합쳐 멋진 12단 HBM 패키징 기술을 구현했습니다.

아직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HBM 제조사들은 아직 TC 본딩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 MR-MUF를 일본 소재 회사 나믹스와 협력해서 상당히 만족할 만한 수율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MR-MUF의 넥스트 레벨, 하이브리드 본딩

그런데 MR-MUF 공정을 쓰면서도 엔지니어들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앞으로 HBM이 발전할수록 정보 입출구(I/O) 역할을 하는 핀 수와 이걸 연결하는 범프, 조금 전 말씀드린 더미 범프 수가 계속 늘어날 걱정을 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범프 간격이 갈수록 좁아지는 건 ‘안 봐도 8K’입니다. MUF 공정을 할 때 칩 아래 범프 사이사이로 액체가 제대로 스며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거죠.



그래서 고안되는 방법이 '하이브리드 본딩'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지난 하이엔드 테크 시리즈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공정입니다. 주로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의 패키징 기술을 살펴 보면서 자주 설명했던 기술인데요. 기존에 칩을 연결할 때 솔더볼로 '납땜'을 하던 방식과 달리 칩과 칩을 '포개어버리는' 방식으로 유명하죠.

자료=AMD


이 기술이 시스템 반도체 뿐 아니라 HBM에도 적용된다면 상당히 큰 기술적 진보를 할 수 있습니다. 칩을 연결하기 위해 필요했던 구리 기둥과 솔더볼(납땜)이 아예 사라지기 때문에 두께가 얇아집니다. 더 많은 수의 D램을 적층할 기회를 잡게 되죠. 또 여러 장치와 가교 없이 칩을 포개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적층된 D램이 훨씬 유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쉬운 기술이 아닙니다. 전선 역할을 하는 ‘구리’와 절연체 역할을 하는 산화막(SiO₂), 특성이 다른 물질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이어 붙여야 하는 난도 높은 공정입니다. 앞으로 SK하이닉스가 이런 난제들을 극복하고 HBM 제조에 하이브리드 본딩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1·2편을 통해 HBM의 세계를 훑어봤는데요. 첨단 D램·패키징 공정을 집대성한 종합 예술 느낌이 들지 않으셨나요. 마침 SK하이닉스는 지난 26일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올해 HBM3에 이어 HBM3E 개발도 세계 최초로 끝마치면서 이 분야에서 확실한 선두 자리를 가져가겠다고 밝혔죠. 올해 이 회사는 HBM 매출이 전년 대비 50%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앞으로 HBM은 어떻게 진화할지, 어떤 공정을 이 메모리에 도입할 것인지 주목하면서 이번 시리즈 마치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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