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구글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웃음). 속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느려졌지만 30대에 도전해보겠습니다."
2일 서울 마포구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인공지능(AI) 검색·추천 스타트업 라이너의 김진우(33)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넘쳤다. 라이너는 웹 등에서 형광펜으로 밑줄 긋듯 하이라이트(강조 표시)를 하면 저장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초개인화 검색과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로 광고를 한 적도 없는데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매달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창업 8년차인 지난해까지 누적 168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쏟아지는 AI 서비스와 거대언어모델 개발 경쟁 속에서 라이너는 챗GPT보다 뛰어난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파도가 시작됐을 때 가장 빨리 올라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생성형AI 열풍을 타고 빠르게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IT 창업 붐 일던 90년대 말 미국서 유년기 보내…부모님이 “창업하라” 권유
미국이 애플·구글 등 정보기술(IT) 창업 신화에 휩싸였을 때 김 대표도 그곳에 있었다. 1990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998년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 교환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2년간 지냈다. 그는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아버지께서 ‘너도 크면 벤처기업을 창업하라’고 하셨다"며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창업을 꿈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귀국 후 중고교를 거쳐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한 그는 연세대·고려대 연합창업학회 '인사이더스'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라이너의 공동창업자인 우찬민 씨와 만나 첫 사업인 온라인 미술관 '아이노갤러리'를 함께 시작했다. 그는 아이노갤러리가 아시아 100대 기업에 선정되면서 시상식이 열리는 홍콩에 가게 됐다. 김 대표는 "당시 사업 발표를 한 중국·인도 등 해외 스타트업들의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작게는 10배, 크게는 100배나 됐다"며 “무조건 글로벌하게 사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아이노갤러리로 번 돈 5000만 원을 들고 2015년 초 우 공동창업자와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그들은 에어비앤비를 빌려 매주 사업이 될 만한 애플리케이션을 하나씩 만들었고 라이너도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인터넷을 하면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이를 공유하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획기적인 서비스가 될 것으로 봤다"며 "밑줄 그은 데이터들이 좋은 검색과 추천 엔진의 연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으면 관심사 파악해 추천·검색
라이너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초개인화된 웹’이다. 웹에서 형광펜 기능으로 밑줄친 것을 토대로 이용자의 관심을 파악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검색, 추천해주는 것까지 통칭한 개념이다. 초개인화 챗봇 ‘라이너 챗’은 주요 기능 중 일부다. 김 대표는 “현재의 검색 플랫폼들은 뉴스와 블로그 등의 링크들을 줄 뿐”이라며 “이용자의 질문에 원하는 답을 바로 내놓는 게 궁극의 검색"이라고 강조했다.
초개인화 챗봇의 차별화된 기능에 대해서는 "이용자가 과거에 어떤 관심을 가졌는지 이용자의 맥락도 파악해 더 적합한 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똑같이 ‘딥러닝’이라고 검색해도 과거 데이터 기반으로 딥러닝 산업에 관심이 많은지, 딥러닝 기술 자체에 관심이 많은지 등 맥락을 파악해 이용자 개개인에게 다른 답변을 내놓는 식이다. 그는 “현재 라이너는 초개인화 수준이 굉장히 높은 서비스”라고 자평하며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클릭하면 바로바로 관련성이 높은 다른 콘텐츠를 추천해준다"고 말했다. 라이너는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 등 운영체제(OS)에서 모두 지원되며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과 PDF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챗GPT 출시 기다렸다"…'초개인화된 웹' 구현 박차
오픈AI가 지난해 11월 대화형 AI 챗봇 챗GPT를 내놓으며 라이너도 그간 추구해온 보다 완벽한 형태의 초개인화 웹을 빨리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라이너는 지난해부터 GPT-3를 기반으로 생성형AI 검색을 시도했다. 김 대표는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챗GPT 같은 서비스가 언젠가 나올 것으로 보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라이너는 챗GPT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가 올해 3월 공개되자마자 바로 서비스에 접목했다.
김 대표는 “챗GPT와 GPT-4 등 대규모언어모델(LLM)도 결국 라이너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라며 자사 서비스 경쟁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라이너는 GPT-4에 라이너 자체 데이터베이스(DB)를 결합해 챗GPT의 한계로 지적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을 극복하고 이용자 관심사 기반의 최신 정보를 찾아준다. 김 대표는 “라이너 자체 DB는 이용자들이 형광펜(하이라이트)이나 북마크로 표시해 쌓인 빅데이터"라며 “이용자가 어떤 콘텐츠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라이너 DB가 초개인화된 AI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DB라는 것이다.
라이너 챗은 챗GPT보다 많은 156개 언어를 지원한다. 미국·인도 등 전 세계에 이용자들이 퍼져 있고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만큼 많아 다양한 언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이용자 비중은 95%에 달한다.
◇AI 페르소나 전문가에 라이너 AI 툴팁까지 고도화 지속
라이너는 더욱 초개인화된 검색을 선보이기 위해 주제별 전문가인 AI 페르소나(독립된 인격) 라인업도 구축했다. IT테크·과학·디자인·인문학·암호화폐 등 여러 전문가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보다 전문적인 답을 내놓는다. 김 대표는 “'나만의 AI 만들기'로 이용자가 페르소나를 구현할 수도 있다”며 “이 같은 페르소나 기능을 업데이트한 뒤 1주일에 13.8% 수준으로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팀프로젝트를 하며 재무회계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재무회계 AI 페르소나에게 질문하고 답하듯 여러 명이 AI와 대화하는 카톡방 형태도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라이너 AI’ 툴팁(팝업 설명문) 기능도 더했다. 김 대표는 “문장을 드래그했을 때 형광펜 긋기에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더 추천해줘’라거나 ‘영어로 번역해줘’라는 식으로 AI에 해당 문장을 더 알아보게 하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AI로 수익 내는 유일한 스타트업"…나스닥까지 간다
라이너는 GPT-4를 사용하는 스타트업 중 거의 유일하게 공헌이익(매출액에서 변동비를 제외한 금액)을 내고 있다. 김 대표는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수천만 명이나 있다는 것이 라이너의 가장 큰 강점”이라며 “오픈AI에 지불하는 비용과 마케팅비를 합한 것보다 AI 기능을 통한 구독 수익이 더 많다”고 전했다.
5년 내 라이너를 전 세계 10억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성장시켜 25%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이루기 위해 광고와 기업간거래(B2B)·기업소비자간거래(B2C) 구독 등 다양한 사업모델(BM)을 시도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나스닥 상장도 추진한다. 메타·카카오·카카오브레인 출신 등 현재 32명인 구성원도 올해 20명을 더 충원할 예정이다.
목표하던 방향대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김 대표는 “사업이라는 게 쉽지 않더라”라며 “방향은 맞지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훨씬 느려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검색이 강점인 네이버가 e메일과 카페를 강조한 다음을 이기는 데 6년이 걸렸고 검색엔진 중심인 구글이 검색 자체보다는 여러 콘텐츠를 묶어 보여주는 야후를 이기는 데도 6년이 걸렸다"면서 “색다르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5~10년 내 당대 최강자인 구글을 따라잡고 넘어서는 꿈을 꾸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