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꼴찌다. 연애를 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게 당연했던 한국식 생애 주기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혼자 살거나 친구 또는 애인과 함께해도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거 가족’이 증가하면서 친구나 애인에게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이 갖는 수준의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족 개념을 유럽 등처럼 동거인으로 확대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복안이다. 결혼과 핏줄로만 이어진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만을 가족으로 규정한 ‘민법 779조’ 역시 존폐 기로에 선 셈이다.
9일 국회 등에 따르면 생활동반자법이 지난달 처음으로 국회에 발의된 데 이어 이달 중에도 추가 입법화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달 혼인과 혈연 기반의 가족 구성원에게 부여된 권리와 책임을 사실혼 배우자, 같이 사는 친구 등 ‘생활 동반자’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14년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섰던 더불어민주당도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다시 추진하고 있고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미 발의 준비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민감한 법안이 추진되는 것은 우리나라 가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친족 간 동거 가구는 47만 2660가구다. 구성원은 101만 51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16년 58만 3438명에서 5년 만에 74% 증가한 것이다. 현재 100만 비친족 간 동거 가구는 주택청약·세액공제·장례·장기이식 등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특히 생활동반자법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도 떠올랐다. 결혼해서 아이 낳는 것만을 ‘정상 가족’으로 규정한 현 가족 제도가 저출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는 게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고 저출산 인구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가족의 범위를 좁게 규정한 민법 779조를 시대 변화에 맞게 손질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민법 제779조가 규정하는 가족의 범위가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족의 모습을 규율한다"며 "가족 정책 수립과 법제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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