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반도체 업황 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최첨단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시설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 반도체 호황에 대비하면서 파운드리 리더십을 속도감 있게 가져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면 세계 파운드리 1위 회사이자 삼성전자의 라이벌 TSMC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간 시설 투자 금액을 지난해보다 낮추는 방향을 선택했다. 첨단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양산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첫 제품 양산을 목표로 평택 3공장(P3) 신규 파운드리 라인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르면 이번 달 초기 시험 가동(원패스)을 예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 3공장은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함께 둘러봤던 반도체 라인이다. 삼성전자가 이 공장 안에 증설하는 파운드리 설비는 첨단 4㎚ 공정이다. 연초 계획했던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2만 8000장 규모 투자를 변경 없이 이어가고 있다. 이번 투자는 삼성전자 전체 파운드리 생산량의 6~7%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월 2만 8000장 규모 4㎚ 라인을 상당히 큰 투자로 본다. 삼성전자가 구현하는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일 뿐만 아니라 D램, 낸드플래시 라인에 비해 훨씬 많은 공간과 반도체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공격적인 파운드리 설비 투자는 최근 혹한기를 겪고 있는 반도체 시황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적인 금리·물가 인상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방 정보기술(IT) 수요가 큰 폭으로 줄면서 반도체 업계는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매출 60~70%를 차지하는 메모리 사업 부진으로 1분기 4조 5800억 원 적자를 봤다. 4월에는 공식적인 메모리 감산을 발표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최첨단 파운드리 투자를 멈추지 않는 것은 파운드리 업계에서 빠르게 리더십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2019년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을 내세우면서 라이벌 TSMC를 제치고 파운드리 1위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침 중에는 ‘셸 퍼스트’ 전략이 있다. 셸 퍼스트는 고객사가 칩 위탁 생산을 주문하기 전에 제조에 필요한 설비(클린룸)를 먼저 확보해 놓겠다는 것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이 전략 아래 평택 3공장, 미국 테일러 부지를 중심으로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도 선제 투자에 나선다.
1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시설 투자는 9조 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7조 9000억원)보다 24%나 늘렸다. 반도체 투자액도 1분기 기준 최대다. 이 가운데 파운드리 라인 투자가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생산 능력 확대는 조금씩 늦어지는 감이 있지만 파운드리 투자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세계 파운드리 시장 60% 점유율에 육박하는 대만 TSMC는 올해 시장 분위기를 반영해 투자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회사의 4월 매출은 1479억 대만달러(6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3% 줄었다. 3월에 이어 2개월 연속 매출 감소가 이어지자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세웠다. TSMC는 지난달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설비 투자액을 전년 362억 9000만 달러 대비 최대 12% 감소한 320억~360억 달러가 될 것이라 발표했다. 실제 1분기 설비 투자액은 99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단 6% 올랐다.
또한 최첨단 공정인 2㎚ 파운드리 설비 반입도 늦출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아이재아 리서치는 이달 발행한 리포트에서 “높은 공정 가격으로 인한 수요 불확실성으로 올해 4분기 예정됐던 2㎚ 제조 장비 반입이 내년 2분기로 늦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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