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 법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는 등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었지만 여야가 주요 쟁점에 대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해 처리가 요원한 상황이다. 정부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설치 시기를 놓치면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지 못해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열린 산자위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는 고준위특별법 3건(이인선·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상정된 안건 중 가장 후순위로 밀리며 쟁점 보고만 진행되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다. 소위 개최에 앞서 이 장관은 22일 국회 각 의원실을 방문해 법안 통과를 설득했다. 하지만 산자위 야당 간사인 김한정 민주당 의원과의 만남이 불발되는 등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설을 세워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저장시설 용량 기준 △관리 시설 이전 시점 △관리위원회 구성 등에서 팽팽한 이견을 보이며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의견이 가장 극명하게 엇갈리는 항목이 저장시설 용량이다. 이 의원과 김영식 의원안은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원전의 운영 기간 또는 운영 허가를 받은 기간 동안 예측되는 발생량’으로 규정했다. 이는 향후 원전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김성환 의원안은 저장시설의 용량을 ‘설계수명 기간 내 발생량’으로 제한했다. 원전의 최초 운영 허가 때 심사한 설계수명 중 예측 발생량 이상으로 저장용량을 늘릴 수 없다는 의미로, 사실상 ‘탈원전’ 정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논의를 늦추고 있다. 국회 산자위 민주당 측 관계자는 “처분 시설 설립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공청회 몇 번 개최한 것 말고는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는 저장시설 착공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적어도 6월까지는 법안이 소위를 통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아 신속하게 처분 시설을 짓지 않으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 관가의 한 관계자는 “7년만 지나면 한빛·한울·고리 순으로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며 “중간 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장을 만드는 작업은 37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하루빨리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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