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의류 생산업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크로커다일레이디·샤트렌 등 이름 대면 알 법한 여성복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1세대 패션기업 ‘형지’의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탄탄한 고객층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의 직격탄으로 2021년 4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내며 회사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까지 빠졌으니 이야기가 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던 형지가 1년여 만에 고난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30대 최고경영자(CEO)인 오너 2세 최준호 총괄사장(사진·39)이 운전대를 잡고 ‘젊은 형지’를 내세우며 과감하게 신사업에 뛰어든 결과다. 최 사장은 사재를 투입해 가두점 전략을 재정비하고, 유니폼·굿즈 등 스포츠상품화를 비롯해 ‘새 판’을 짜며 턴어라운드의 기반을 다졌다. 올해는 국내를 너머 해외까지 시야를 넓힌다. 골프복 자회사인 ‘까스텔바작’의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형지’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 등판한 소방수답게 최 사장은 해외 진출 계획도 추상적인 ‘바람’이 아닌 구체적인 수치로 이야기했다. 2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최 사장은 “현재 1% 미만인 까스텔바작의 해외매출 비중을 5년 내 50%, 10년 내에는 9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거품이 빠지고 있는 국내 골프복 시장에서 최대로 낼 수 있는 매출은 1000억 원대에 불과하다”며 “까스텔바작을 단순 골프복이 아닌 캐주얼 브랜드로 전환해 미국 시장에 안착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아세안 시장을 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동대문 신화’로 불리는 최병오 형지 회장의 장남인 최 사장은 2011년 입사해 현장 실무를 익혔으며 2021년부터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30대의 ‘젊은 CEO’지만, 회사에서 그의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직함만 ‘패션그룹형지 총괄사장’, ‘형지엘리트 사장’, ‘까스텔바작 대표이사’ 등 3개다. 코로나 직격탄에 회사가 휘청이자 최 회장이 최 사장을 구원투수로 내세우면서다. 엄중한 상황에 중책을 맡은 최 사장은 지난해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 정말 망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으로 뛰었다.”
올해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장기 목표’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것이 까스텔바작의 해외 진출이다. 까스텔바작은 형지가 2016년 인수한 프랑스 패션 브랜드로 빨강, 초록, 노란색 등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지만,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흑백 계열에 더 비중을 두고 판매를 전개했다. 최 사장은 “대중성을 노려 블랙앤화이트 유행을 따라간 것”을 국내에서의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 “화려한 컬러감을 살려 까스텔바작을 ‘호불호 있는 옷’으로 새단장하겠다”며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그만큼 확실한 마니아층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채널 전략에서도 차별화를 꾀한다. 최 사장은 “까스텔바작 만큼은 형지의 가두점 전략을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형지는 다음 달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웨스트 할리우드 멜로즈 지역에 까스텔바작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 또 태국 유통기업 센트럴그룹과 협약을 맺고 동남아시아 시장 문도 두드린다. 이 외에도 확실한 캐시카우를 확보하기 위해 10조 원 규모의 미국 군납 의류 시장에도 발을 들인다. 최 사장은 “패션은 코로나와 같은 대외 변수에 민감하고, 형지의 포트폴리오는 패션에 치중돼있다”며 “조달업을 회사의 한 축으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젊은 브랜드 발굴에 나선다. 주요 패션 플랫폼에서 판매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여성복 ‘시야쥬’가 형지가 투자를 단행해 인큐베이팅한 대표 사례다. 주 고객층인 중장년 여성을 위한 캠페인 활동도 펼칠 예정이다. 최 사장은 “20~30대 여성들이 명품을 구매하려고 몇 년을 저축하는 것처럼, 60~70대 고객들이 돈을 모아 사는 브랜드가 샤트렌이고 크로커다일레이디”라며 “여성복 사업을 계속 키워나가며 고객에게 보답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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