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와 함께 자동화 로봇 도입 등으로 노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면서 한 해 34만 명씩 늘어나던 취업자 수가 최악의 경우 7만 명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줄어드는 노동 공급을 채우기 위해 고령층·여성·외국인을 최대한 동원해봐도 역부족이라는 계산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인 빈곤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물론 노동 공급 감소로 잠재성장률이 더 떨어져 돌이킬 수 없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경제전망보고서 심층분석’에 실린 ‘노동 공급의 추세적 변화에 대한 평가 및 전망’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2023~2027년 전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연평균 7만~14만 명으로 2010~2019년 평균치인 34만 4000명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추정했다. 2019~2022년 평균 노동시장 진입·퇴장률로 추정하면 7만 명, 2021~2022년 중 최대 진입률과 최소 퇴장률을 적용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경우를 가정했을 때는 14만 명이다. 그동안 꾸준히 늘었던 경제활동참가율(이하 경활률) 추세도 2020년대 중반 이후 하락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 공급이 급격히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급속한 고령화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이지만 55세 이상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2010년대 이후에도 경제활동인구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베이비붐 세대로 분류되는 1955년생부터 1963년생이 올해 들어 모두 60대로 진입하면서 노동 공급 불안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노동 공급의 한 축을 담당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얼마나 잔류할지에 따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연구원 분석 결과 고령층의 경활률 변화는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만 65세 미만 여성 고령층은 교육 수준 향상, 서비스업 확대 등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여지가 크다.
반면 만 65세 미만 남성 고령층은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 수요 감소 등으로 경제활동이 정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로봇 등 자동화 기술 발전이 빠른 만큼 전통 제조업 등에 종사했던 남성은 갈수록 일하기가 힘들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고령층·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고용 확대 정책을 모두 추진하더라도 향후 5년 동안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연평균 25만~30만 명에 그쳐 과거 수준(34만 4000명)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령층 경활률을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고인 일본·독일 수준(80~90%)까지 끌어올려도 추가적인 고용 인원이 3만~5만 명 수준에 그친다. 여성 고용 확대도 5만 명이 최대다. 올해 3.8%인 외국인 인구 비중을 G7 평균(7.8%)까지 높여도 8만 명 정도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 공급 둔화는 결국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은 고령층·여성·외국인 고용 확대 정책을 모두 시행한다면 향후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2%포인트 안팎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 동력은 더 빠르게 식어버리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205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0.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최근 고령화 등이 잠재성장률 저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한국이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이달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5~10년 이내 노후 빈곤 문제가 굉장히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연금·교육 등 구조 개혁이 정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기 위한 이민 문제나 임금체계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진도 고령화에 따른 성장 잠재력 약화 가능성에 대응해 노동 공급의 양적 측면뿐 아니라 인적 자본의 축적, 생산성 등 질적 측면 개선에도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학계에서는 고령화가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기술 진보 가속, 인적 자본 투자 확대, 노동·자본시장 국제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실장은 “고령화 심화가 반드시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견해도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해 성장 잠재력 확충 방안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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