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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첨단산업 인력 32만명 부족…기업이 '실무형 인재' 직접 키운다

■與, 사내대학원 등 인재혁신법 발의

프로젝트 수행으로 정식학위 인정

기업 수요 맞춤형 석·박사급 양성

첨단산업 인력위기업종으로 지정

해외인재 신속입국·체류연장 지원

정책 총괄 위한 인재혁신위 설치도





여당이 대기업 사내대학원 설치·운영 등의 전례 없는 내용까지 망라하는 첨단산업인재혁신특별법을 발의한 것은 산업계가 체감하는 인력 수급 미스매치의 심각성 때문이다. 향후 10년 내 정부가 추산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바이오·미래차·로봇 등 주요 첨단산업에 적기 공급돼야 하는 인력 규모는 최소 32만 3000명가량이다.

그러나 각국의 글로벌 첨단 인재 유치 경쟁이 격화하면서 영어에 능한 국내 인재는 해외로 떠나고 해외 우수 인재는 국내로 오지 않아 생긴 국내 대기업의 인력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어렵사리 구한 국내 석·박사급 인재의 경우 대학에서 현업과 동떨어진 이론 지식만 쌓거나 사장된 과거의 실무 교육만 이수한 탓에 현장에서 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다고 산업계는 토로한다.

이에 여당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실무형 석·박사급 고급 인재 확보를 위한 패키지 법안을 연초부터 준비해왔다.

31일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부와 사전 교감 하에 발의한 법안의 골자는 정부가 첨단산업 인재혁신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며 산업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재혁신위원회를 두고 주요 정책을 총괄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첨단산업 고용연계형·수요연계형·투자연계형 인재 육성 등 혁신 사업의 사전 조사, 분석, 사후 평가 등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는다.

특별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고용노동부의 고용위기업종지정제를 본뜬 첨단산업인력위기업종지정제도 도입된다. 산업부 장관이 인력 부족으로 산업 내 기업의 도산, 사업장의 폐쇄·이전 등이 발생한 산업계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일정 기간 첨단산업인력 위기대응 특별업종을 지정하고 여러 특례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수년 내 급격한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이 지원 대상 후보군이다.

첨단산업인력위기업종에 지정되면 대학·대학원의 정원이나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의 편입 인원 확대는 물론 해외 인재의 신속한 입국·정주·영주·귀화 등의 방법을 통한 지원도 받게 된다. 이를 위한 예비타당성조사의 면제와 재정 지원 필요성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아울러 산업계의 자발적인 첨단산업 인재 혁신도 유도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특히 대학·대학원대학 형태의 사내대학원 인가를 허용할 방침이다. 기업의 수요 맞춤형 교육 및 문제 해결 역량 강화를 위해 기업 프로젝트 결과물로 학점과 학위가 인정되는 프로젝트 학위제로 운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삼성전자공과대학(1989년 개교)을 시작으로 SPC식품과학대학(2011년), 대우조선해양공과대학·LH토지주택대학(2013년), 포스코기술대학(2014년) 등 8개 사내대학이 세워졌지만 KDB금융대학·삼성중공업공과대학·현대중공업공과대학 등 3곳은 현재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반면 기업들은 국내 대학들의 교육 과정이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사내대학제도의 근간을 학부 중심에서 대학원 중심으로 이동시켜 석·박사급 고급 인재를 직접 길러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설문 조사 결과 126개 업체 중 120개가 사내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당면한 과제를 연구 주제로 채택할 수 있는 데다 사내대학원 졸업 직후 현업으로 복귀해 배운 내용을 업무와 바로 결합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사내대학원의 장점이다.

법적 제도 미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우물을 파고 있는 케이스도 나오고 있다. 올 3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 ‘LG 인공지능(AI) 대학원’이 대표적이다. LG경영연구원이 2020년 말 미 스탠퍼드대 등의 석·박사 커리큘럼을 벤치마킹해 야심 차게 선보인 사내 교육 프로그램이다. 18개월가량 풀타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박사 과정의 경우 SCI·SSCI급 학술지에 저널 1편을 게재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노력과 학문적 성취가 LG그룹 내에서만 인정될 뿐이라는 점이다. 국내 대기업들로서는 사내 우수 인력이 재교육을 명분으로 국내외 유명 대학원을 정거장 삼아 이직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각 기업이 앞다퉈 사내대학원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나선 이유다.

사내대학원 입학 자격도 해당 사업장 근무자에서 ‘동종업종 종사자’ ‘예비취업자’ 등으로 넓힐 예정이다.

해외 우수 인력 유치에도 팔을 걷어붙인다. KOTRA 내 해외인재유치센터를 설치하고 첨단산업 분야 종사 외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체류 가능 기간을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특별법에 담았다. 특히 첨단산업 지원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라는 공감대 속에서 의원입법을 선택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첨단산업의 성패도 결국 사람에 달렸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의원실은 6월부터 공청회 등 법률안 제정의 후속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K칩스법 여야 합의에서 보듯 첨단산업 육성에 한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자세라 이르면 연내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예상된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년간 등록금 동결으로 국내 대학(원)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기업이 기대하는 수준의 첨단산업 인재를 육성하는 데 한계를 보인 것은 사실”이라며 “대기업이 직접 나서는 만큼 학위 남발이 되지 않도록 교육 품질 관리에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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