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는 지금까지 전례 없는 리스크를 경제에 안겨주고 있다”며 기후위기 등 ‘환경 리스크’ 평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2월 영하 20도의 유례없는 한파 때문에 한 기업에만 수천 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 미국 FM글로벌이다. 당시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공장 가동 중단으로 3000억~40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삼성전자는 현지 보험사인 FM글로벌에 보험금 4억 달러(약 5290억 원)를 청구했다. 그러나 FM글로벌은 예외 조항을 내세워 1억 2600만 달러(약 1666억 원)만 지급했고 삼성전자는 FM글로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한파·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보험사에는 거대한 리스크로 떠오른 셈이다.
홍 사무총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대 전력 회사인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의 사례도 언급했다. PG&E는 2018년 발생한 대규모 산불에 대해 약 13조 원의 배상 책임을 지게 돼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 회사의 송전선이 끊어지면서 바싹 마른 수풀에 불을 붙인 것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탓이다. PG&E가 파산보호 절차를 밟게 되면서 이 회사의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 주식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마저 손실을 입게 됐다. 지구온난화라는 만성적인 위험이 결국 금융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홍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중단은 밸류체인 전반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금융사 입장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도 신용 리스크뿐만 아니라 환경 리스크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이상기후로 인해 얼마나 재무적 손실을 입을지 보다 정밀하게 예측할 도구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틀을 잡아가는 단계로 볼 수 있다. WWF와 유엔 등의 국제기구가 출범시킨 과학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등이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달 말께 공개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공시 기준은 금융기관들의 환경 리스크 평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 사무총장은 “이미 외국계 금융사들은 한국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해외에서 사업을 할 계획이 있다면 환경 리스크 평가 등과 관련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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