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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나홀로 통화완화에 한달새 100원 뚝…수출·여행수지 악재될라

◆원·엔환율 8년만에 장중 910원 붕괴

4월말 1001원 → 14일 장중 902원

환차익 노린 엔화예금도 1조 급증

역대급 엔저에 일본여행객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 폭 확대될 가능성

석유화학·車업종 수출도 타격 우려





엔화 가치 급락으로 원·엔 환율이 두 달 새 100원 가까이 떨어지면서 8년 만에 8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에도 굽히지 않는 일본중앙은행(BOJ)의 나 홀로 완화정책 속에 미국의 금리 동결과 반도체 회복을 기대한 외국인 투자금 유입에 따른 원화 강세가 더해지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대급’ 엔저에 일본을 찾는 여행객들도 빠르게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 폭을 키워 하반기 경기 반등의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오전 장중 한때 902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전일 대비 1.49원 오른 912.46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910원을 밑돈 것은 2015년 6월 11일(909.74원) 이후 8년 만이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는 최근 들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전날 원·엔 환율은 하루 새 12원 넘게 급락한 910.97원으로 마감했다. 연중 최고점을 기록했던 4월 27일(1001.61원)과 비교하면 한 달 남짓(거래일 기준) 만에 100원가량 급락한 셈이다.

엔화 약세는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숨 가쁘게 금리를 올려온 것과 달리 일본은 제로 금리를 유지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해온 게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엔화는 올 들어서도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3월 24일~5월 31일 엔화 가치는 미 달러화 대비 6.2% 하락했다. 중국(-3.4%)과 한국(-2.4%) 등 같은 아시아 국가는 물론 스웨덴(-4.0%)과 호주(-2.1%) 등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대 낙폭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미국과 일본 금리 차 확대로 투기와 실수요 모두 엔화 매도세로 기울면서 지난해의 기록적 엔저 구도가 재연되고 있다”며 미일 금리 차를 엔저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16일 취임 이후 두 번째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현 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원화의 상대적 강세도 원·엔 환율을 빠르게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1270원대까지 내려갔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경기 침체 우려로 더 이상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되찾았다”며 “최근 외국인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으로 자본수지의 흑자 요인이 커지는 점도 원화 강세를 이끌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가치의 단기 급락으로 환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월 말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7259억 엔으로 한 달 새 1283억 엔(약 1조 1690억 원)이나 급증했다. 중장기적으로 엔화 가치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엔화 예금으로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는 언젠가 오를 수밖에 없는 만큼 지금 사놓은 것은 나쁘지 않은 투자 전략”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엔저 특수에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급증해 서비스 수지 적자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여행 수지 적자는 32억 3500만 달러로 2019년 3분기 이후 3년 반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대 1분기 기준으로는 5년 만에 최대다. 서비스 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여행 수지 적자 폭이 커질 경우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을 가늠하는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주 실장은 “엔저가 장기화하면 여행 수지 적자 폭이 커지면서 경상수지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며 “또 해외 소비가 늘면서 그만큼 국내 소비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엔저는 우리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석유화학·철강·자동차 등 일본과의 경쟁이 치열한 업종을 중심으로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3분기 엔·달러 환율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수출 물량이 0.2%포인트 감소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과거에 비해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엔저가 장기화하면 분명 한국 수출에는 악재”라며 “일본의 통화정책이 급변하기 전까지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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