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을 품었지만 막대한 양의 쓰레기도 쏟아지는 곳, 바로 제주특별자치도다. 환경부에 따르면 제주도의 하루 평균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1.64㎏(2020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0.89㎏)보다 2배 정도 많다. 이 가운데 관광객들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40%가량을 차지한다. 제주의 쓰레기가 타 지역과 유독 다른 부분은 6521개(2021년 기준) 숙박업소의 객실 7만 7877개에서 연간 약 70만 장의 침구 폐기물이 배출된다는 사실이다. 고급 숙박업소의 경우 서비스 품질 기준이 높은 탓에 새것이나 다름 없는 침구조차 1~2년 안에 교체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버려지는 침구의 99%가 소각 처리된다는 점이다.
베개, 이불 커버 같은 섬유류는 재활용하기 쉽지 않아 대부분 쓰레기로 배출된다. 차승수 제클린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5성급 호텔에서 쓰던 침구를 수거해 재생사(실)로 재탄생시키는 일에 나섰고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고급 숙박업소일수록 재활용이 어려운 혼방 소재가 아니라 100% 순면 침구를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클린이 숙박업소들의 침구 세탁을 대행하던 사업 초기에는 섬유 재활용 기술도, 관련 설비도 전혀 없었다. 차 대표는 폐기 처리가 예정된 침구를 수거해 깨끗하게 세탁한 다음 취약 계층에 기부하거나 베개 솜을 재생해 재생솜 이불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부는 한계가 있었고, 재생솜 이불은 재생 과정(소독, 세탁, 고온 살균)에서 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이 많은 데다 비용도 적지 않게 투입됐다.
차 대표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러한 어려움을 토로하자 우연히 관련 내용을 접한 태광산업 측이 협업을 제안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제클린이 숙박업소에서 순면 침구를 수거해 선별과 세탁 과정을 거치면 이를 넘겨받은 태광산업이 재생사를 생산하는 분업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제클린은 태광산업이 생산한 재생사를 가져다 양말·타월 등의 완제품을 생산해 판매한다. 각 품목이 소량인 탓에 여러 공장에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외려 공장 측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섬유 산업의 낡은 틀을 벗어던져야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린다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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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까지는 제클린의 재활용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순면 타월의 경우 마감 처리를 위해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잘라낼 수밖에 없다. 또 섬유 재생은 기본적으로 긁어내 파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사(짧은 섬유)만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단사로만 양말·타월을 만들면 조직이 성글어 제대로 된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고 한다. 단사인 재생사는 20%만 쓰고 나머지 80%는 새로운 면섬유(초면)를 투입해야 하는 이유다.
차 대표는 “앞으로 더 나은 기술이 등장하면 초면 비중을 50~70%까지 낮출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글로벌 리사이클 인증인 GRS도 재생 소재 비율이 31%를 넘으면 제품 강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리사이클 인증을 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순면으로 만든 재생사 제품은 반복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 폐페트병을 폴리에스테르 원사로 만들어 옷이나 가방을 생산하면 이후에는 재활용이 안 돼 폐기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면섬유는 세탁할 때 나일론·폴리에스테르 섬유처럼 미세플라스틱 방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제클린은 앞으로 재활용 섬유 활용의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차 대표는 “폴리에스테르 장바구니도 다회용이지만 재활용이 안 돼 결국 폐기해야 하는데, 지금도 버려지고 있는 수천 톤의 면섬유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비닐봉투 대신 쓰면 자원 순환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린피스가 2020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235억 장의 비닐봉투를 사용한다. 정부가 2030년부터 상업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스케줄에 맞추려면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침구 폐기물에 대한 법적인 가이드라인도, 재활용 의무나 재생 관련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차 대표는 “면섬유 재활용은 제클린이 국내 최초인 데다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면서 “앞으로 섬유 수출에 대한 재생 소재 사용이 의무화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환경 규제가 강력한 유럽 등으로 수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폐페트병 재활용 기술이 각광받기까지는 무려 20여 년이 걸렸지만 폐섬유 재활용은 더욱 빠르게 미래 기술로 정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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