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가전은 LG.’
LG전자가 국내 최초의 진공관 라디오를 만들었던 1959년부터 LG가 생산해 낸 제품에 으레 따라붙는 표현이다. 고장이 없고 튼튼해 오랫동안 쓸 수 있었던 LG전자 제품의 신뢰도가 단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홈앤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는 세계 가전 시장 수요가 얼어붙은 올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59% 성장한 6900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가전 명가의 자존심을 지켰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슬로건은 LG에 일종의 약점이기도 했다. 가전제품의 특성상 매출이 안정적이지만 초고속 성장을 이루기는 어렵고 소비자거래(B2C) 한계에 묶여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안겨줬다.
그랬던 LG전자가 B2C 기업에서 벗어나 기업간거래(B2B)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프리미엄 가전제품에 전장, 로봇, TV 플랫폼 사업 등이 더해져 미래를 위한 ‘트윈 엔진’을 달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의 트윈 엔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장 사업이다. 사실 LG전자가 전장 사업에 발을 내디딘 지 올해로 10년이다. 이 세월은 LG전자에 상당히 혹독했다. 2015년 영업이익 500억 원을 기록한 후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단 한번도 연간 흑자를 낸 적이 없었다. 사업 경험이 전무한 데다 △천문학적 선행 투자가 필요했고 △수주부터 양산까지 3~5년간은 까다로운 자동차 고객사 인증을 거쳐야 하다 보니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잠재력 하나를 보고 10년을 버텼던 LG전자 전장(VS)사업본부는 지난해 1696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하며 질주를 시작했다. 올해 수주 잔액이 100조 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대차·벤츠·BMW·폭스바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력 완성차 기업들을 고객사로 맞았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시의적절한 설비투자의 결과다.
LG전자의 전장 사업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조명, 전기차 파워트레인 등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기까지는 M&A가 큰 몫을 차지했다. 2018년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회사 ZKW를 인수한 데 이어 2021년 7월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JV)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하는 등 파격적인 M&A, 협업 행보로 덩치를 키웠다.
글로벌 거점 구축에도 거침이 없다. 2015년에는 브라질·폴란드·베트남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이듬해에는 북미·유럽·중국 사업센터와 베트남 전장 전용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했다. LG마그나는 설립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4월부터 멕시코에 연면적 2만 5000㎡ 규모의 신규 전기차 부품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연간 실적에 대해서도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LG전자 VS사업부 실적은 매출 10조 9000억 원, 영업이익 3122억 원으로 전망돼 최대 실적 달성이 예상된다”며 “전장 사업 영업이익 기여도가 내년에는 10%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봇도 공들이는 신규 B2B 사업이다. LG전자는 서비스 로봇, 스마트 공장용 산업용 로봇으로 나눠서 전개하고 있다. ‘LG 클로이’라는 브랜드를 단 서비스 로봇은 LG전자 내 B2B 사업부인 BS사업본부가 담당한다.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봇부터 △물건을 배송하는 서브봇 △커피 제조용 바리스타봇 △살균 로봇인 ‘UV-C봇’ 등 다양한 용도의 서비스 로봇을 출시해 호텔·쇼핑몰·식당·병원·도서관·물류센터 등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2018년 자회사로 편입된 로보스타의 활약도 괄목할 만하다. 로보스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장에서 쓰이는 수직 다관절 로봇 등을 공급한다.
증권 업계에서는 올해 LG전자의 로봇 매출은 지난해 대비 두 배 성장한 3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한다. 내년에는 600억 원, 2025년에는 약 1300억 원까지 늘면서 매출을 키워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을 노리는 LG전자의 비밀 병기는 TV 플랫폼 사업이다. TV 사업에서 독자 플랫폼인 ‘웹(web)OS’로 광고와 콘텐츠 매출을 늘리겠다는 구상도 세웠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파라마운트플러스 등 유명 콘텐츠 회사와의 협업으로 TV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각 기업들이 LG TV 플랫폼을 마치 ‘광고판’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 모델을 펼쳐 나가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올 초 ‘CES 2023’ 전시회에서 “2018년 대비 지난해 광고·콘텐츠 부분 매출이 10배 늘었다”며 “굉장한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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