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의 경직된 노동 구조와 교육 환경이 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14일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글로벌 경제 상황과 기업 환경’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국내 산업이 지난 10년 동안 ‘중국 특수’에 중독돼 구조 조정 기간을 놓쳤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개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가면 전체 국내총생산(GDP) 중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면서 산업구조 조정이 일어나 서비스업 전환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시장 개방과 저임금 특수를 누리면서 제조업 비중이 그대로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부상이 산업 변화의 패러다임을 늦추고 산업구조가 더 높은 단계로 가야 할 시간을 늦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대(對)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것도 단순히 미중 갈등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구조적 원인이 숨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유독 경직적인 우리나라의 노동 구조도 산업 진화를 막는 장애물이라는 게 이 총재의 지적이다.
그는 “가령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이 배터리나 전기차 산업으로 전환된다고 하면 기존 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실업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평생직장 개념이 강해 해고가 어려워 구조 조정이 어렵고 이런 고통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최근 산업 트렌드가 기후변화·저탄소·헬스케어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경직된 노동 구조 때문에 빠른 적응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산업 전환이 일어나면 교육도 변화해야 하지만 우리는 고3 때 성적에 따라 전공이 결정되고 그마저도 교수들의 기득권 때문에 정원 조정도 어려워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는 “미국이 앞으로 금리를 두 번 정도 더 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만 금리를 내렸다가 금리 격차가 커지면 환율 등 외환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고 가계부채도 최근 다시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될 것이냐’는 청중의 질문에는 “우리 젊은이들은 일본보다 더 역동적인 것 같다”며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구조 조정 숙제만 풀어낼 수 있다면 일본처럼 고생을 겪지 않고도 저성장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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