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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반도체 부활 '야심'…TSMC 팹 3년 앞당겼다

[창간기획 - Big Shift 제조업大戰]

◆추격 속도내는 日·獨

4~5년 걸릴 공사 18개월에 끝내

'실리콘아일랜드' 규슈 명성 회복

獨 BMW, AI 기반 전동화 가속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가 일본 소니·덴소와 손잡고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 공장 바로 옆에는 광활한 양배추밭이 펼쳐져 있다. 사진=노우리 기자






지난달 28일 일본 구마모토현 제2하라미즈공업단지. 이곳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발주한 시스템반도체 공장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놀라운 것은 건설 속도다. 축구장 30개 크기(21만 ㎡)의 반도체 공장은 지난해 4월 착공돼 1년 반 만에 완성을 앞두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데는 4~5년이 걸린다. 현장에서 만난 구마모토현 관계자는 “공장이 완공되면 시범운행을 거쳐 내년 말부터 12~28㎚(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TSMC 시스템반도체를 월 5만 5000장씩 찍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TSMC 구마모토 공장은 ‘히노마루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980년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0%를 책임지며 ‘실리콘아일랜드'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규슈 일대가 TSMC 공장 건설을 계기로 30년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통의 자동차 강국 독일도 인공지능(AI)·로봇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공정을 앞세워 뒤처졌던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찾은 BMW그룹 뮌헨 공장의 한편에서는 전기자동차 모델인 ‘노이어클라세’ 생산라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7년까지 활용됐던 내연기관차 도장 공장을 허문 자리에 각종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굉음을 울리며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BMW는 101년 역사의 뮌헨 공장을 완전한 전기차 생산 시설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공식화했다. 전동화 라인 전환이 노조의 반대나 수도권 환경 규제 등으로 쉽사리 추진되지 못하는 국내 실정과 대비된다.

BMW 독일 뮌헨 공장 내 차체 라인에서 로봇이 작업하고 있다. 김기혁 기자


뮌헨 공장이 전기차 생산의 첨단 기지로 탈바꿈한 비결은 새로운 디지털·스마트 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하며 생산 공정을 일대 혁신한 데 있다. 차체 라인에서는 자동화 공정이 거의 100% 구현돼 직원은 2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약 1200대의 로봇이 전기차 i4 등 모델의 차체를 직접 들고 발광다이오드(LED) 빛으로 굴곡률을 검사하고 있었다. 로봇으로 라인을 빼곡히 채우면서 협소한 이 공장에서 지난해에만 차량 20만 대를 생산했다.

日 ‘히노마루 반도체’ 선언…'실리콘 아일랜드' 부활하나


일본 본토 최남단 규슈의 중앙에 위치한 구마모토는 반도체 산업사에서 ‘격변의 시기’를 지낸 지역으로 손꼽힌다. 1960년대 구마모토에 NEC와 미쓰비시 등 유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둥지를 틀며 규슈 일대는 일본의 대표 반도체 거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반도체가 세계 시장점유율 50%를 넘긴 1980년대에는 규슈가 생산하는 반도체 양이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0%에 육박해 ‘실리콘 아일랜드(silicon island)’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실리콘 아일랜드’의 위상은 사라졌고 지역 경제에도 긴 침체의 늪이 드리웠다.

30년이 지난 이곳에는 격변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2021년 6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하며 ‘히노마루 반도체’의 부활을 선언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이곳에 공장 건설을 결정하면서다. ‘일장기’라는 뜻을 지닌 히노마루는 앞에 붙으면 ‘국가대표’라는 의미를 가진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가 일본의 소니·덴소와 손잡고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사진=노우리 기자


지난달 28일 찾은 구마모토 TSMC 공장의 건설 현장은 기대감을 반영하듯 분주했다. JR하라미즈역 인근 제2 하라미즈공업단지에 도착하자 광활하게 펼쳐진 양배추밭 바로 맞은편에 반도체 팹과 사무동 수 개를 합친 거대한 단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좁은 도로에 건설 자재를 실은 차가 몰리며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끝없이 들어오는 차들이 엉키지 않게 관리하는 인원들도 공사 현장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반도체 생산 시설과 사무동 건물은 외부 골격이 거의 갖춰진 ‘완성형’ 상태였다. 공사 현장을 설명한 구마모토현 관계자가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생각보다 크레인이 많지 않아 오히려 놀랄 수도 있다”고 말한 이유를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공사를 시작한 이 공장은 9월 완공 예정이다. 시범 운행을 거쳐 2024년 말 생산을 개시하는 게 목표다. 축구장 30개 크기의 거대한 규모(21만㎡)의 공장 건설이 불과 1년 반 만에 끝난 것이다. 비슷한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이 적어도 4~5년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속도다.

두 가지가 주효했다. 일본의 대표 건설사인 가시마건설이 붙어 ‘24시간, 3교대’ 공사 체제를 도입했다.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공사장’인 셈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행정적 지연을 압도적으로 줄였다. TSMC가 구마모토현에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2021년 11월 9일)한 뒤 2주 만에 구마모토현청에는 ‘반도체산업집적강화추진본부’가 만들어졌다. 개발 허가부터 산림·토지 행정 등 공장 건설과 관련된 담당자들을 전부 한곳으로 모은 ‘컨트롤타워’ 성격의 기구다. TSMC가 요구 사항을 전달하면 이곳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와 이를 위해 필요한 제반 사항들을 한꺼번에 취합해 보내는 식이다.

노리야스 요시나카 구마모토현 산업진흥국 기업입지과 본부장은 “TSMC는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2024년 말까지 출하하고 싶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며 “국가 차원의 반도체 강화 프로젝트인 만큼 현청에서는 가능한 행정 처리에서 시간을 끌지 않도록 빠른 처리를 도왔다”고 말했다. 공장 유치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4조 5000억 원 규모의 보조금도 투입했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에서는 카메라와 자동차 등에 주로 사용되는 12~28㎚(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시스템반도체(월 5만 5000장)를 생산한다. 일본에서 현재 제조 가능한 반도체가 40㎚ 공정 이하임을 고려하면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첨단 반도체 제조 거점’으로의 도약을 위한 첫 단추다. 더욱이 이곳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일본 전자 업체 소니와 자동차 부품 업체 덴소 등 전량 일본 기업의 제품 생산을 위해 우선 활용된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제조업 부흥을 위한 터 다지기 성격으로도 읽힌다. 노리야스 본부장은 “전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거점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며 “‘신생 실리콘아일랜드 규슈’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을 자국에 두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계획도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1단계가 주도권을 가진 외국 반도체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었다면 그 다음은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자국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도요타·소니·덴소·기옥시아·NTT·NEC·소프트뱅크 등 8곳의 일본 대기업이 지난해 8월 ‘라피더스(Rapidus)’를 출범시킨 것도 이 과정을 위한 포석이다. 라피더스는 최첨단 기반 기술은 미국 IBM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해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벨기에 반도체연구개발기관인 IMEC로부터 지원받는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인데 일본은 그 부분에서 아주 강하다”며 “네덜란드 ASML이 주도권을 가진 노광 공정을 빼면 사실상 최첨단 반도체 구현을 위한 소부장 생태계를 현지 기업만으로 갖출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에 위협이 될 소지가 충분히 있는 만큼 적기 투자를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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