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값 반등과 함께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면서 한국은행에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7월 13일 기준금리 결정 당시 의사록을 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이 가계부채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일 이창용 총재가 나서서 가계부채 문제를 언급했으나 실제로는 더 강한 지적과 비판이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금통위원들은 최근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직접적 원인으로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를 콕 짚었습니다. 금통위원들이 특정 대상, 그것도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금통위원 전원이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익명으로 작성되는 의사록 특성상 어떤 금통위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번에 나온 주요 발언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높은 가계부채 규모와 함께 거시건전성 정책 방향이 통화정책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사이의 상충이 더 크게 우려된다.”먼저 해당 발언은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까지 내려오는 등 점차 둔화하면서 미국 등 다른 주요국보단 물가가 좀 더 빨리 목표 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지만 높은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내릴 수 없는 딜레마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특히 당국의 거시건전성 정책이 한은의 통화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대출 부문의 거시건전성 정책은 당국의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말합니다.
“최근 주택 관련 대출의 증가는 MPP(거시건전성 정책)의 변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LTV, DTI 및 DSR 등을 감안하여 MPP 규제 강도를 지수화하고 이를 가계부채 추이와 비교해 봐야 한다.”올해 하반기 중 전체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주택 관련 대출만 놓고 본다면 대출의 증가 규모가 상당이 클 것이라는 한 금통위원의 지적에서도 구체적인 거시건전성 정책과 관련된 언급이 나옵니다.
“최근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세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불균형 완화를 위해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 방향 간 적절한 정책공조(policy mix)가 필요하다.”
부동산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로 이어졌다는 더욱 직접적인 언급도 나옵니다. 이건 한 명이 아닌 여러 금통위원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올해 1월 3일 규제 지역 및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 해제, 전매제한 기간 완화,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폐지, 중도금대출보증 기준 폐지 등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여기에 DSR 규제를 받지 않고 저금리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규제 완화로 부동산 경착륙은 막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시장이 연착륙을 지나 연이륙으로 방향을 틀면서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등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금통위원들은 왜 이토록 가계부채 확대를 우려하고 있을까요? 이는 한 금통위원이 자신의 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하며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 위기대응 정책이 주요국과는 달리 통화·재정정책에 더해 적극적인 금융 지원을 통해 이뤄지면서 민간신용 누증이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발생한 자산가격의 급등과 민간부채의 빠른 증가는 금융부문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를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재작년 통화정책을 긴축기조로 전환하게 된 주요 배경이다.”한은이 2021년 8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물가보단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불균형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가계부채가 줄어들고 집값도 하락하면서 디레버리징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부동산 규제가 완화되고 주택금리도 하락하면서 집값이 다시 오르고 가계부채가 늘어 “그간 이뤄온 정책 노력의 성과가 무산될까 우려된다”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금통위원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요? 당국의 정책부터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거시건전성 정책이 특정 부문에 미시적·선별적으로 대응 가능한 반면 통화정책은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불균형에 대해서는 통화정책보다는 우선적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가계부채 관리는 절대적 수준보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을 살펴봐야 합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05.3%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3위로 높습니다. 한은은 중장기적으로 이 비율은 GDP 대비 80%까지 낮춰야 성장률 등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기존 방식으론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GDP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도 규제 당국이 예전의 방식대로 가계부채를 관리하게 되면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어려워 보인다. 저성장 기조하에선 규제 당국도 가계부채 관리의 구조적인 측면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GDP 성장률(4%)보다 1%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가계부채(3%)를 관리한다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까지 낮아지는 시점은 2039년이 될 것이란 한은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통위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할까요. 일단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가계부채 문제가 지속된다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실제 금리 인상에 나서게 될지는 모르지만 높은 긴축 수준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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