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인터내셔널(001120)이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주 감(GAM) 광산은 인수하자마자 10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 LX인터 전신인 LG상사는 2012년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주의 감(GAM) 광산 운영권을 사들였다. 2017년부터 현지에서 석탄 생산을 시작했는데 2019년 시황 악화에 순식간에 대규모 적자가 났다. 2018년 79억 원가량 이익을 냈는데 다음해 948억 원 손실을 보면서 회사도 위기에 빠졌다.
분위기는 몇 년 뒤 반전했다. 지난해 LX인터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8조 7595억 원, 9655억 원을 올리며 축포를 터뜨렸다. 사상 최대 실적은 석탄 광산 등 자원 개발 부문이 주도했다. 자원 부문 매출은 1조 3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나 늘어나며 실적 개선의 1등 공신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탄 가격이 2021년 말 톤당 184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380달러까지 급등하면서다. 자원사업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6%에 달했다. 2019년 10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한 GAM 광산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4500억 원의 이익을 낸 것이다. 그간 광산 누적 손실을 다 털어내고도 남았다. LX인터 관계자는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인도네시아 석탄 광산이 순식간에 ‘노다지’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천연가스 개발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2000년 초 당시 예산이 초과돼 사업이 좌초될 뻔했다. 인도 파트너사들이 그만두자고 했지만 당시 대우인터(현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는 밀어붙였다. 결국 2004년부터 2006년 세 차례에 걸쳐 4조 ㎥ 규모 3개의 가스전을 찾아냈다. 원유로 환산하면 7억 배럴 규모다. 당시 동남아 최대 규모 가스전이었고 현재도 국내 업체가 개발한 가스전 중 최대 규모다. 신경도 쓰지 않던 미얀마 가스전에 글로벌 업체들이 몰려들어 개발을 시작했다. 가스전 프로젝트로 국내 중공업·철강사 등 후방 산업도 호황을 누렸다.
상사(商社)의 시대가 돌아왔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축소되고 탈세계화와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자원 개발에 능하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한 상사들의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물산(028260) 상사 부문,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등 국내 주요 상사들은 조(兆) 단위 투자 계획을 세우고 제2의 상사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달 국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에서 3년간 3조 80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사업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인천·광양·포항을 중심으로 126만 톤의 청정수소 공급 인프라를 2035년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을 소개하고 2030년까지 GW(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권을 2개 이상 확보해 국내 최대의 재생에너지 사업회사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밝혔다.
LX인터내셔널은 대규모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니켈 등 2차전지 원소재 광산 투자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최근 회사는 앞으로 발행할 주식의 총수를 기존 8000만 주에서 1억 6000만 주로 두 배 늘리는 정관 변경 안건도 주총에서 통과시켰다. 주식 총수를 변경하는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 유치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삼성물산 역시 상사·건설·바이오 등에 3년간 1조 5000억 원~2조 원을 투입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상사부문의 경우 태양광, 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미국·호주에서 현재 16.4GW인 태양광 파이프라인을 25GW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사가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우면서 변화를 꾀하는 데는 불확실성의 여파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망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전 세계적인 탈중국 흐름으로 중국 외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가 새로 생기고 있다. 또 탈탄소 규제에 따른 에너지 시장 재편과 전기차 소재 수요 확대에 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신사업 대응 능력이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상사 업계는 되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며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각국의 분쟁이 심화되면서 상사들이 이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상사들은 광산·가스전·농장 등 할 것 없이 대규모 자원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레이딩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개발부터 생산·판매까지 하는 일본형 상사 모델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에너지와 식량 자원 확보에 분주하다. 포스코인터는 인도네시아 해상 천연가스전을 30년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고 탐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스 매장 추정량만 13억 배럴로 광구 면적은 서울시의 14배다. 최근에는 광구에 대한 생산물 분배 계약도 체결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부와 포스코인터의 천연가스 분배 비율은 55대45로 포스코인터가 다소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가스전뿐 아니라 식량 사업에도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인터는 북미 곡물 사업 진출을 위한 조직을 확대하고 현지 관련 기업 인수합병(M&A)과 투자를 물색하고 있다. 2030년까지 경작지 86만 ha를 확보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서울시 면적의 15배 규모다.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북미 태양광 개발 사업에서 올해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고 있다. 올 1분기 2000만 달러 규모의 북미 태양광 매각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매각 수익은 4800만 달러로 올해는 이보다 수익이 더 크게 뛸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성일하이텍과 독일에서 2차전지 리사이클링 공장을 합작 운영하면서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상사들이 해외 광산과 가스전, 농장과 에너지 단지를 찾아 개발하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의 역할에 최적화돼 있어서다. 네트워크가 넓고 수많은 자원 개발을 한 경험도 한몫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인터가 인도네시아 가스전을 자신 있게 탐사하는 것은 2000년대 초 미얀마 가스전의 성공 경험 때문”이라며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밸류체인을 담당하는 일본 상사의 사업 모델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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