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상하로 관통한 8월 10일. 전국에서 쏟아지는 비바람을 뚫고 충남 천안시 천안아산역 인근 충남창업마루나비 4층에 모여든 수십 명의 창업가는 하루 종일 서로에게 사업 아이템을 설명하고 협업 대상을 찾느라 분주했다. 오후 6시를 조금 지난 시각 근처 식당에서 시작된 저녁 자리. 소주와 맥주, 매운갈비찜이 곁들여진 테이블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플랫폼 ‘그릿지’를 운영하는 송영서 소프트스퀘어드 최고전략책임자(CSO·이사)는 충남 지역 창업가들이 소속된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신동익 출발선 대표에게 즉석으로 협업 제안을 했다.
신 대표가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천안시에 있는 8개 대학과 업무협약(MOU)를 맺어 각 대학 개발 동아리 소속 학생들을 창업가 공동체로 편입시키는 것. 송 이사는 “뛰어난 개발자를 찾아 프로젝트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지역 공동체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학 개발 동아리 학생들을 찾는 일을 공동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신 대표는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물은 없지만 소프트스퀘어드와 함께 접촉하면 결과가 다를 것”이라며 “오늘 자리가 끝난 후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자”며 화답했다.
이들이 한데 모여 각자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낮은 단계일지라도 협업 제안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있다. 19개 금융기관이 8450억 원을 출연해 만든 창업재단 디캠프는 지난해 12월 창업가 네트워킹 프로그램 ‘리모트워크(Remote Work)’를 발족했다. 매달 최대 4번 진행되는 리모트워크를 통해 수도권 외 지역 창업가, 예비 창업가, 벤처캐피털(VC)·엑셀러레이터(AC·초기 기업을 투자·육성하는 투자 기관) 투자심사역, 창업기관 관계자들은 서로를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며 각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사업 협업, 투자 제안을 한다.
리모트워크는 발족 후 8개월 동안 21회 전국 각지에서 열렸고 1010명에 달하는 인원을 모았다. 올해 7~8월 행사를 진행했거나 개최할 예정인 지역은 부산·대구·대전·광주·충남·제주·전주다. 리모트워크에서 참석자들은 하루를 함께 보내며 점심·저녁을 먹고, 이외 시간에는 1대 1로 대화하며 사업 협업 제안, 노하우 공유 등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VC 투자심사역과 선배 창업가의 강연도 이뤄지지만 필요 시 혼자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날 행사에서는 시리즈A 라운드(본격적으로 받는 첫 번째 투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선배 창업가가 1시간 넘게 강연을 하며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4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뷰티 기업 라피끄의 이범주 대표는 “스톡옵션과 관련해 ‘성공하면 다 나눠주겠다’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말은 통하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얼마의 매출을 발생시켜 언제 기업을 상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어떤 형태든 대출을 받으면 추후 투자를 받기 어려워진다”며 “자금 운영 측면에서 대출은 가장 후순위로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자·특허 전문가들의 상담도 활발히 이뤄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강훈 하나벤처스 수석투자심사역은 오후에 창업가와 예비 창업가를 대상으로 한 ‘투자 유치 노하우’ 질의응답 세션을 진행했고, 이후 창업가들을 1대 1로 만나 장시간 투자 유치 관련 상담을 했다. 국내 대형 AC 스파크랩스의 김다니엘 팀장 또한 오전부터 창업가들을 만나 투자·사업 상담을 했고, 이외에도 장성 다감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가 현장을 찾아 스타트업 특허 관련 상담을 진행했다. 김 팀장은 “이런 행사는 유망 기업을 찾아야 하는 AC에게도 유익한 행사”라고 말했다.
디캠프는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리모트워크 프로그램을 통해 지방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달 17일에는 대구에서, 22일에는 전북 전주시에서 리모트워크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김 대표는 “리모트워크는 일선 직원이 적극적으로 제안 및 추진하면서 현실화돼 지역 창업가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지역 창업가들 간의 네트워킹을 통해 지방 창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확대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