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마리의 소떼가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드넓은 초원. 15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차로 3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오트웨이 국제 CCS(탄소포집·저장) 실증센터의 첫 모습이다. 축구장 621개 크기의 초원 아래 고갈 가스전과 대염수층에는 2004년부터 주입해 온 이산화탄소(CO₂) 약 10만 톤이 묻혀있다. 수십 만년간 천연가스를 간직하고 있던 가스전의 단단한 덮개암은 이제 CO₂가 지상으로 절대 흘러나올 수 없도록 막는 코르크 마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폴 바라클로그 CCS실증센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CCS는 안전하고 낮은 비용으로 CO₂를 영구히 묻을 수 있는 기술"이라며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정부와 미국 쉐브론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더욱 발전된 CCS 기술을 확인하고 활용하기 위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CCS 실증센터…쉐브론부터 전세계 글로벌 기업 총집합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이곳에 몰리는 이유는 오트웨이가 CO₂포집·저장 관련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최적의 요건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다. 센터 지면에서 2㎞ 아래에는 고갈 가스전이, 1.5㎞ 심도에는 대염수층이 존재해 CCS 연구에 적합하다. 게다가 근방 2㎞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산화탄소 지층이 있어 멀리서 포집해 올 필요도 없다.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는 이를 활용해 지금까지 약 1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고갈 가스전과 대염수층에 묻었다. 특히 이 곳의 가스전은 CO₂가 상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덮개층이 있어 유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라클로그 COO는 "지난 2020~2021년께 인근에서 강도 5 수준의 지진이 있었지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10년 넘게 문제 없이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오트웨이 CCS 실증센터에는 현재 총 3개의 CO₂ 주입정과 4개의 관측정이 1.5㎞~2㎞ 깊이의 CO₂ 저장층과 연결되어 있었다. 초창기 두 개의 주입정을 통해서는 단순히 CO₂를 땅 속에 묻는 작업에 집중했다면, 세 번째 주입정을 통해서는 향상된 모니터링 기술 적용에 중점을 뒀다. 바라클로그 COO는 "기존에는 땅 속 이산화탄소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면 25일이 걸렸지만 광섬유를 활용한 탄성파 모니터링 등을 통해 이틀로 당겼다"고 설명했다. 보다 면밀하고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의 흐름을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韓 지질연도 2004년부터 실증 참여…4단계엔 특허기술 적용도
올해 말부터 시작될 네 번째 프로젝트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기술도 적용한다. 한국 지질연은 2008년부터 이곳에서 CO₂지중저장기술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CO₂를 땅 속에 묻을 때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압력이다. 묻을 수 있는 양과 효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국 지질연은 혼합물 첨가제를 활용해 압력을 낮게 유지하며 최대한 많이 CO₂를 묻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박종찬 지질연 박사는 "효율이 2배 개선되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며 "내년 초 네 번째 주입정을 통해 CO₂를 묻을 때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CCS 프로젝트 196개… 넷제로의 가장 현실적 대안
CCS는 사실 100년도 더 된 기술이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넷제로 달성을 선언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한 번에 중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산화탄소만 포집해 저장할 수 있는 CCS 기술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는 CCS 프로젝트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약 30개의 CCS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상업 운영 중이며 지난해까지 계획된 사업을 모두 합치면 196개에 달한다. 이들의 CO₂처리 용량은 2억 44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각국 정부도 적극적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일찌감치 CCS를 국가 핵심 기술로 미우고 있다. 국가 간 월활한 CO₂ 이송을 위한 법안도 곧 승인을 앞두고 있다.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글로벌 큰 손들도 몰리고 있다. 미 쉐브론은 오트웨이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1600만 호주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CCS 기술을 활용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기존 1030만 톤에서 1120만 톤으로 조정하는 등 CCS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CO₂를 저장하는 대규모 저장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동해가스전을 활용한 CCS 실증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연간 12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동해가스전 지중에 저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SK(034730) E&S가 호주 산토스 등과 함께 CO₂ 지중 저장소 개발을 추진 중이다.
박용찬 박사는 "국내 저장소가 부족한 상황이라 국가 간 CO₂ 운송 관련 법률이나 제도 관련 협의가 필요하다"며 "동남아, 호주 등 아태 지역에 CO₂ 저장소를 확보하게 되면 운송 거리 감소로 CCS 사업의 경제성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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