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높은 금리에도 가계부채가 다시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집값 향방을 관망하던 심리가 상승 기대감으로 확 기울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 기준금리 동결에 이어 특례보금자리론 등 주택 구매 독려 정책이 더해지자 주택 매매가 급증하면서 서둘러 집을 사야 한다는 불안심리가 확산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중국이 부동산 위기로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반도체 등 수출 회복 시점이 지연되는 가운데 높은 체감물가에 소비심리마저 6개월 만에 꺾이는 등 경기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고령화·저출산으로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국면에서 줄지 않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2일 한은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 가격 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07로 전월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2022년 5월(111) 이후 1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주택 가격 전망 CSI는 1년 뒤 집값 전망에 대한 질문으로 100을 넘으면 집값이 오른다고 한 응답자가 내릴 것이라고 한 응답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주택 가격 전망 CSI는 지난해 11월 사상 최저인 61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초부터 매달 5~9포인트씩 빠르게 상승했다. 6월(100)까지만 해도 집값 상승과 하락 전망이 균형을 이뤘으나 7월 들어 급격히 상승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전국 주택 거래량이 증가하고 매매가격도 상승 전환하면서 주택 시장이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강해지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가 이례적인 건 경기 전망은 점차 나빠지고 금리는 더 오를 것으로 보면서도 집값 상승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리스크 등으로 현재 경기 판단 CSI(72)와 향후 경기 전망 CSI(80)는 각각 3포인트, 4포인트씩 하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금리 수준 전망 CSI도 118로 전월보다 6포인트 올랐다. 이에 전반적인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3.1로 전월보다 0.1포인트 떨어져 6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중국발 리스크나 반도체 수출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경기 관련 심리 지수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도 오히려 주택 거래와 가계대출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가계 신용 잠정치에 따르면 6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1748조 9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10조 1000억 원 늘면서 1년 만에 증가 전환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14조 1000억 원 증가하면서 1분기(4조 5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3배 확대됐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가 집값을 끌어올리자 개별 주담대까지 늘고 있다. 주택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9만 1000가구까지 떨어졌으나 올해 1분기 11만 9000가구, 2분기 15만 5000가구로 빠르게 늘고 있다. 7월에도 은행 가계대출이 6조 원 늘어난 만큼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은과 정부 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과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더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한은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현재 101%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하면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미시 정책을 폈는데 연착륙 기조로 가면서 가계부채도 늘어난 것”이라며 “정부, 금융 당국과 가계부채가 더 늘지 않도록 미시적·거시적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몇 년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밑으로 떨어지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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