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소재 기업 재원산업이 최대주주인 고(故) 심장섭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4000억 원 규모로 추진하던 상장 전 2차전지 투자 유치를 미루게 됐다. 심 회장 유가족이 부담해야 할 거액의 상속세가 투자 협상에 큰 결림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부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유가족 측 구주까지 사들여 아예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까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재원산업은 지난해부터 진행한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 IPO) 작업을 최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당초 재원산업은 국내 사모펀드에 4000억 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 올 5월에는 삼일PwC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MBK파트너스와 스틱인베스트먼트, 어펄마캐피탈 등 중대형급 운용사들 5곳의 투자 의향서까지 접수했다. 재원산업은 신주 인수전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상반기 안에 신속하게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려고 했다. 투자받은 4000억 원을 2차전지 소재 관련 사업에 쏟은 뒤 내년쯤 성공적으로 주식시장 입성할 계획이었다. 업계에서는 재원산업의 기업가치가 1조 50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상황은 25.54% 지분을 쥔 심 회장의 숙환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급격하게 바뀌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작업을 미룬 재원산업은 심 회장이 7월 별세하자 공식적인 투자 유치 절차 자체를 멈췄다.
업계는 심 회장의 부인인 전영자 씨(재원산업 지분율 8.00%)와 자녀인 심성원 여수탱크터미널 대표(17.70%), 심재원 재원산업 대표(17.46%), 심수정 씨(12.72%) 등이 최대주주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내야 할 상속세 규모를 최소 수백억 원으로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심 회장 지분을 어느 사람이 어느 정도 비율로 받는지 여부에 따라 세금 규모가 최대 1000억 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우량 기업 투자가 발목을 잡히자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유가족들에게 상속세 마련을 위한 구주 매각까지 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몇몇 대형 운용사들은 경영권 매각까지 건의했다가 유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앞으로 기존 전략에 상속세 마련 방안까지 제시하는 사모펀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투자 의향을 밝힌 한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우리도 구주와 신주를 묶어 경영권까지 인수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재원산업은 1987년 설립돼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세정제를 만드는 전남 여수의 향토 기업이다. 주요 고객사는 삼성SDI(006400)와 SK하이닉스(000660), LG디스플레이(034220) 등 국내 대기업들이다. 최근에는 2차전지 사업에도 진출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양극재 바인더 용매(NMP) 리사이클(재사용) 사업 선두 업체로 올라섰다.
회사 실적도 최근 5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재원산업의 연결 기준 매출은 2017년 1469억 원에서 지난해 2855억 원까지 늘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