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빠른 속도로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서둘러 수습에 나선 가운데 한국은행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를 꺾기 위한 고육책이 나왔다. 과거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 등 금융 불균형이 확대 과정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이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하고 금리 인하 명분을 스스로 없앤 것이다. 14일 한은이 금융 불균형을 우려하며 언급한 “정책당국 간 일관성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속뜻은 ‘금리를 빨리 내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다짐인 셈이다.
그동안 차주들은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곧 인하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출을 새로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올해 4월 이후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금리가 곧 떨어질 것이란 인식이 깔린 상태에서 집값 바닥론과 함께 특례보금자리론, 인터넷전문은행 대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 인하 압박 등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당국이 먼저 나서서 50년 만기 주담대 등을 손을 보자 한은도 금리 인하 기대를 꺾으려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다만 한은의 이번 선언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참고 자료 중 하나인 ‘최근 금융불균형 상황 점검 및 정책적 시사점’이다. 해당 자료를 작성한 것은 2021년 8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완만하게 하락하다가 최근 집값이 상승 전환하고 은행 가계대출도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긴축적 통화정책에도 왜 또 집값이 오르고 대출이 늘어나는지, 어떻게 대응할 지를 분석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거시건전성정책(Macro-Prudential Policy·MPP)과 통화정책(Monetary Policy·MP)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먼저 제시했다. 여기서 MPP는 대출 부문에서 미시적으로 감독 당국이 실시하는 정책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이다. MP는 단순하게 말하면 기준금리 결정이다.
한은은 금융 불균형 대응 과정에서 두 가지 이론적 논의를 소개했다. ①번은 MPP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견해, ②번은 MPP와 MP가 공조해야 한다는 견해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불균형 제어를 위한 MP의 역할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②번 이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MPP와 함께 MP로 사전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그래야 후생도 증대된다는 연구도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상 가계부채와 집값 대응 과정에서 금리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7월 금통위 의사록이나 총재 발언을 보면 금리(MP)는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딘 수단이라며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우선 대응할 것을 강조하면서 통화정책을 아껴두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7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거시건전성정책(MPP)이 특정 부문에 미시적·선별적으로 대응 가능한 반면 통화정책(MP)은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 불균형에 대해서는 통화정책(MP)보다는 우선 거시건전성정책(MPP)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다만 한은이 이번에 강조한 통화정책(MP)의 역할은 다르다. 금리를 더 올려서 가계부채나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해 긴축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한은은 우리나라가 부동산 부문이 경제 규모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면서 자원 배분의 효율성 저하, 부동산 경기에 대한 경제 취약성 증대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특히 주요국과 달리 ①디레버리징이 없었다는 점과 ②부채가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디레버리징도 없이 가계부채 문제가 이토록 커지게 됐을까. 한은은 이를 과거 MP와 MPP 정책 조합의 실패에서 답을 찾았다. 특히 2014년과 2020년을 주목했다. 한은은 2014년 8월과 10월 각각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00%까지 낮췄다. 이후로도 금리 인하를 거듭해 2016년 6월엔 1.25%까지 낮췄다. 세월호·메르스 사태 여파가 금리 인하 배경이었다. 당시 정부도 규제를 풀면서 MP와 MPP가 동시에 완화되면서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간 강화적 상호작용이 발생해 집값 급등과 부채 급증으로 직결됐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정부는 각종 부동산 규제 등으로 강도 높은 긴축적 거시건전성정책(MPP)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통화정책(MP)이 초완화적으로 급변해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0.50%까지 떨어졌다. MP 완화 기조가 MPP 긴축 효과를 제약하면서 시차를 두고 금융 불균형이 나타났고 결국 2020~2021년 빚투와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시기는 거시건전성정책(MPP)보다 통화정책(MP)이 중요하다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2014년과 2020년 사례에서 한은이 얻은 교훈이 이번 보고서에서 강조한 ‘중장기적으로 디레버리징을 지속하기 위한 정책당국 간 일관성 있는 정책 공조 노력’이다.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렵게 표현했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대출 규제를 풀어주면서 금리마저 내리면 집값이 오르고 부채가 늘어난다’, ‘대출 규제를 조이고 있더라도 금리가 매우 낮으면 집값 상승과 부채 증가가 나타난다’로 풀이할 수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주요국 사례를 보면 대체로 MP 공조 대응이 MPP 중심 대응보단 효과적이었다. MP와 MPP가 동반 완화적이거나 동반 긴축적일 때 주택가격이나 가계대출에 대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MP와 MPP가 따로 움직이면 정책 효과가 반감되거나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은이 길고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현시점에서 통화정책(MP)을 완화적으로 조정했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20~2021년 집값 급등기를 겪으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2분기 98.1%에서 2021년 3분기 105.6%까지 급격하게 늘었다. 가계 순가처분소득 대비 중위 사이즈(90㎡) 아파트 가격 배율은 2020년 17.4배에서 2021년 23.6배, 2022년 29.4배까지 확대됐다. 1년 동안 버는 순가처분소득 전체를 17.4년 모아야 27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면 불과 2년 뒤인 2022년엔 30년을 모아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2021년 8월 한은은 주요국 중에서 가장 먼저 금리를 인상하면서 초완화적 통화정책(MP)을 중단한다. 이미 각종 부동산 규제가 시행 중이었는데 차주별 DSR 규제도 도입되면서 금리 인상은 서서히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 집값은 지난해 8월 이후 하락 전환했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완만한 둔화세를 보였다. MP와 MPP가 동반 긴축으로 작동하자 이번엔 집값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자 정부는 올해 1월 주택시장 연착륙을 위해 규제지역 해제, 중도금 대출 제한 폐지 등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MP는 긴축인데 MPP는 다소 완화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 결과가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반등이다. 8월 은행 주담대 증가 규모가 3년 6개월 만에 7조 원을 돌파하는 등 금융 불균형 위험이 다시 커지면서 당국이 먼저 나섰다. 지난 13일 금융위원회는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 과정에서 DSR 산정 만기를 40년으로 단축하고 소득 제한이 없던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취급도 전면 중단했다. MPP를 다시 조인 것이다.
이날 보고서 간담회에서 이상형 부총재보는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운용하고 있고 거시건전성정책은 지난해 말 금융시장 불안과 주택시장 경착륙에 1차적으로 대응했는데 그 과정에서 예상보다 더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거시건전성정책으로 대출 증가 요인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적합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이번 분석 시사점에 대해 “과거 사례를 볼 때 국내 금융 불균형 누증엔 부동산 부문이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은 긴 시계에서 일관되게 수립돼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나온 핵심 메시지로 금융 불균형이 지속되는 환경에선 긴축 기조를 장기화하겠다는 취지다.
긴축 기조는 추가 인상보단 고금리 장기화일 가능성이 크다. 추가 금리 인상을 하려면 여러 조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부총재보는 “통화정책은 금융 불균형이나 가계부채만 보고 할 수 없고 성장이나 물가, 금융안정 상황 등을 종합해서 고려해야 한다”며 “국제적인 고금리 환경이 오래간다거나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커진다거나 국제유가 불확실성이 확대되거나 가계부채와 관련해 금융 불균형 위험이 예상보다 누증된다면 통화정책 긴축기조를 강화하거나 장기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금통위가 최종금리를 3.75%까지 열어두고 있다는 것은 이날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 발언대로 “올려야 한다는 의미보단 성장, 물가, 금융, 외환 등을 봤을 때 기준금리가 오를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한은은 고금리 장기화를 이어가겠다는 맥락에서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 사례도 들고 나왔다. 한은은 “미국에서 시장참가자들은 내년 중반 금리 인하 기조 전환을 기대하고 있으나 견조한 고용에 따른 양호한 경기 흐름, 연준이 물가 목표치 수렴에 확신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정책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도 한두 차례 추가 인상 후 장기간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물가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에 안정적으로 수렴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시점도 아직 상당한 불확실성이 상존해 있다”고 평가했다. 누적된 비용상승 요인의 파급영향 지속, 중국의 방한 단체관광 재개, 초과저축으로 인한 수요 측 압력, 공공요금 인상 관련 불확실성 등 상방 요인을 주로 거론했다. 유가나 환율에 따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결론적으로 한은은 이창용 총재가 거듭해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했으나 이를 믿지 않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금리 인하 기대를 꺾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다만 중국 경기 부진 등으로 우리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는 커질 가능성이 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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