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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끝이 보이는 엔캐리 트레이드

이태규 국제부 차장

연합뉴스




2002년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일본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을 보면 주인공의 단골 식당 벽에 붙어 있는 백반 정식의 가격은 지금과 비슷한 1000엔(약 9000 원)이다. 20년 넘게 요지부동한 물가는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랬던 일본이 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달리고 있고 기업의 임금 인상률도 약 30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신중한 일본 정부조차 ‘경제 재정 백서’에서 “탈(脫)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 흐름의 큰 변화는 세계 최초로 양적 완화에 나서고 마이너스 기준금리 실험까지 한 일본은행(BOJ)도 움직이게 할 태세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계속적인 물가 상승을 전제로 “마이너스 금리 종료도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시장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문제는 이 움직임이 낳을 파장이다. 수십 년간 계속된 돈 풀기로 일본 투자자들은 초저금리에 돈을 빌려 미국 등 높은 이윤을 주는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이어왔다. 이렇게 전 세계에 풀린 자금만도 지난해 말 기준 531조 엔(약 4775조 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일본의 금리가 오르면 ‘집 나갔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자금이 전 세계 국채 매입을 중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매까지 해 세계 채권 금리를 갑작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다”며 “이미 일부 헤지펀드들은 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전 세계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키고 주식 등 위험 자산 투자 심리에도 타격을 줘 결국 실물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지난달 기준 14조 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보유해 전체 외국인 보유액의 2.1%를 차지했다. 절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체적인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충분하다. 실제 일본은 올해 들어 우리 주식 5520억 원어치를 순매도해 주요국 중 최대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일본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직접적으로 빠져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 위축에 따른 간접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오랜 기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을 경각심을 갖고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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