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63세가 되는 1961년생이 국민연금(노령연금)을 받는다. 1년 선배들보다 1년 더 늦게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1965~1968년생은 64세부터,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받는다. 국민연금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단행한 1998년 1차 연금개혁에서 지급 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국민연금의 지속성은 여전히 풍전등화다. 특히 2016년부터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국민연금 수령이 시작되면서 기금 고갈 우려가 심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급여비 지출액은 올해 36조 2287억 원에서 2027년 53조 3413억 원으로 연평균 10.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연금보혐료 수입은 같은 기간 56조 5439억 원에서 62조 1148억 원으로 연평균 2.4%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 운용 수익 등을 포함해도 연평균 수입 증가율은 5.4% 정도여서 지출 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가 유지돼 수입과 지급의 불균형이 지속되면 2055년에는 기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최근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8%로 높이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6~68세로 늦추는 국민연금 개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단 은퇴 전 급여 대비 수령 연금의 비중인 소득대체율은 40%를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이다.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더 늦게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더 적게 받기까지 하면 국민 반발이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정년을 앞둔 사람들은 걱정이 앞선다. 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늦게 받을수록 소득이 없는 ‘은퇴 크레바스’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법정 정년 60세를 그대로 둔 채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높이면 은퇴 크레바스가 무려 8년간 이어진다. 퇴직 이후 경제적 삶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레 법적 정년 연장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아직 노동계와 경영계의 간극이 크다. 노동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연금 개시 연령과 법정 정년이 맞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며 ‘법정 정년 65세 연장’을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법정 정년 연장은 기업과 사회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퇴직 후 재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타결된 현대차 임단협에서도 정년 연장이 쟁점이었다. 노조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동해 최장 만 64세로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사측은 ‘시니어 촉탁제(숙련자 재고용 제도)’의 계약 기간을 최대 2년(1년+1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격론 끝에 정년 연장은 추후 논의하기로 하고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퇴직 후 재고용은 사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활성화돼 있다. 소득 크레바스를 줄인다거나,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 균형 같은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정년퇴직한 베테랑 직원은 쉽게 구하기 힘든 ‘자산’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역시 새 직장을 구할 필요 없이 익숙한 업무를 계속할 수 있다면 소득이 다소 줄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한 자동차 부품 제조사는 정년이 지난 직원들 중 약 40%를 근로자 사정에 따라 3~10년 추가 고용한다. 또 다른 중소 철강 업체는 정년퇴직자를 신입 직원으로 재고용하고 아예 퇴직자 전용 공장도 운영한다.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정년퇴직자들까지 채용해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방위산업체도 있다.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보다 퇴직자의 업무 효율성이 훨씬 높다”고 입을 모은다. 재고용된 직원들도 “익숙한 업무이기 때문에 급여는 줄었지만 대체로 만족한다”고 전한다.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지급 시기와 법정 정년을 연동하는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은 퇴직자 재고용 활성화를 통해 은퇴 크레바스 기간을 줄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정부도 고령 직원을 재고용하는 기업에 ‘계속고용장려금’ 등의 제도를 통해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