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약 3000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적발된 BNK경남은행 본점 투자금융부 직원 A 씨. 그는 2007년부터 15년 동안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무려 77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빼냈다.
# 우리은행 직원 B 씨는 2011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중간에 1년을 제외한 10년 동안 본점 기업개선부에서만 근무했다. 10년간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체를 담당한 B 씨는 결재 시스템의 허점 등을 이용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총 697억 원을 횡령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금융권에서 대규모 횡령 사고를 일으킨 직원들의 공통점은 ‘장기 근무자’였다는 것이다. 10년이 넘게 한 부서에 머물렀던 이들은 담당 업무의 감시 사각지대를 손쉽게 파고들었고 장기간 거리낌없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이에 금융 당국은 순환 근무 원칙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주요 은행에서만 1400여 명이 장기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각 은행의 하반기 인사가 마무리된 7월 초 기준으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장기 근무자 수는 총 1406명으로 집계됐다. 은행연합회 모범 규준에 따라 영업점에서 3년 이상 또는 동일 본부 부서에서 5년 넘게 연속 근무한 직원은 장기 근무자로 분류된다. 은행별로 보면 특히 국민, 하나은행의 장기 근무자 수가 각각 679명, 70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한, 우리은행은 각각 19명, 6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 업무 지원 부서만이 아니라 대출·외환·연금 등 회사와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핵심 부서에도 다수 배치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국민은행에서 대출 관리 및 집단 대출 지원 등을 담당하는 대출실행센터 내 장기 근무자는 18명으로 이들의 평균 근무 연수는 8.72년이었다. 원화·외화자금 조달과 금리 협의를 맡은 하나은행 자금부 직원 2명의 평균 11.2년을 근무했다.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광주은행의 한 직원은 13년 넘게 여신감리부서에서 근무 중이었다. NH농협, 국민은행의 경우 핵심 부서가 몰려 있는 본부에만 장기 근속자가 각각 176명, 178명씩 있었다.
동일 부서 장기 근무가 곧 내부 통제 부실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거래 상대방과의 유착, 감시 시스템 회피 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순환 근무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금감원과 함께 지난해 11월 장기 근무자 비율 제한 실시, 장기 근무자 인사 관리 기준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국내 은행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민 의원은 “지난해와 올해 은행 횡령 사고 규모가 커진 것은 은행에서 순환 인사 원칙 등 기본적인 내부 통제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장기 근무자들의 타 부서 이동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며 “은행은 장기 근무자를 통한 영업 실적 확대보다도 금융소비자의 재산을 보호하고 신뢰를 쌓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국민·하나 등 은행들은 내부 통제 혁신 방안 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장기 근무자 비중을 순환 근무 대상 직원의 5% 이내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동일 부서 근무가 5년이 넘은 직원들은 2025년까지 모두 전출하고 혁신 방안 내용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축소 시점을 2025년에서 2024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은행들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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