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005940)이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채권형 랩어카운트 가입 고객의 손실 배상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채권시장 경색에 관행이던 ‘채권 돌려막기’가 어려워져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선제적인 배상에 나선 것이다.
2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최근 두 달여간 이어진 내부감사를 통해 그동안 채권형 랩어카운트 상품 운용 과정을 점검한 결과 올해 손실이 확정된 일부 법인 고객들에 대해 배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NH투자증권의 채권형 랩 규모는 9조 원이 넘는다. 투자자들의 손실은 수백억 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NH투자증권은 책임 정도와 범위를 따져 180억 원 안팎의 배상을 해주기로 했다. 다만 대상을 넓힐 경우 배상액은 더 커질 수 있다. NH투자증권 측은 “충분한 법률 검토와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일부 법인 고객에 적절한 배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근절하고 고객 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대형 법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채권형 랩·신탁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높게 제시해왔다. 그 결과 만기 3~6개월로는 고객들이 원하는 수익률 달성이 어려워 1~3년짜리 고위험 채권이나 유동성이 낮은 기업어음(CP)을 투자 대상에 넣었다. 환매 시 다른 증권사에 채권을 높은 값에 팔거나 증권사 자체 자금으로 사들여 편법으로 수익률을 메워줬다. 돌려막기식 대응을 해온 셈이다.
레고랜드 사태의 후폭풍으로 증권사들이 이 같은 방식의 환매가 막히자 금융 당국은 5월부터 만기 불일치와 자전거래 관행을 불건전 영업 행위로 규정한 뒤 이를 금지했다. 최근까지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KB·하나·한국투자·교보·키움증권 등이 이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았다.
금감원은 대형 증권사가 스스로 잘못된 영업 행위를 인정하고 배상을 결정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만큼 다른 증권사도 순차적으로 배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NH투자증권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영업 관행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진일보한 조치”라며 “업계 전반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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