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6일 ‘금융 안정 상황’을 통해 향후 3년 동안 정책 대응이 없다면 가계부채가 매년 4~6%씩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시장 전망을 바탕으로 가계의 대출 수요를 추정한 결과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주택 거래가 장기 평균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결과다.
한은은 이를 토대로 한 시나리오 분석에서 그동안 내렸던 집값이 고점을 회복하고 그만큼 대출이 늘어날 경우 위기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가계부채 증가와 가계·기업의 채무 상환 부담이 금융 시스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만큼 당분간은 대출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날 한은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신용 비율은 101.7%로 1분기(101.5%)보다 0.2%포인트 반등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3분기(105.7%) 고점 이후 내림세를 보이다가 상승 전환한 것이다. 한은은 최근 집값 반등과 가계대출 확대 등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비율이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선진국(73.4%)이나 신흥국(48.4%)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인데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셈이다.
금융 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2분기 43.6으로 전 분기 대비 상승 전환했다. 마찬가지로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확대의 영향이다. FVI는 1분기(43.3)까지만 해도 장기 평균인 39.1로 근접하면서 안정되다가 2분기 반등하며 다시 위험이 확대됐다.
한은의 시나리오 분석 결과 향후 3년 안에 집값이 고점을 회복하면서 가계부채가 동반해 늘어난다면 FVI는 2026년 4분기 70.5까지 급등한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2021년 10월 고점 대비 24.8% 하락했다가 올해 1~7월 11.2% 상승했다. 현재 고점 대비 83.62% 수준이다. FVI가 상승할수록 대내외 여건이 급변해 자산 가격이 급락했을 때 GDP가 받는 하방 압력도 커진다. 한은 관계자는 “디레버리징이 같은 정도로 일어나더라도 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경제가 받는 충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계기업 비중은 15.5%로 2021년(14.9%)보다 확대됐다. 특히 5년 이상 연속으로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장기 존속 한계기업은 903곳으로 금융기관 차입금 50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면 이러한 장기 존속 한계기업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낮아질 수 있다.
한은은 당분간 대출 증가세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향후 금융 불균형 확대 흐름을 완화하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의 공급 속도 조절, 50년 만기 장기 주담대 등을 집중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급격한 디레버리징은 또다시 위기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이날 정부의 공급 대책에 대해서는 시장 기대 심리를 누그러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고금리 레버리지가 걱정되기 때문에 관계 당국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규제를 완화했다가 신속하게 대처하는 상황”이라며 “한은도 실무적으로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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