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집값 경착륙 막으려 '빚투' 사실상 묵인…"가계부채 지병 키웠다"

[부채 함정에 빠진 한국]<1> 사라진 디레버리징 - 정책 딜레마

정부공급 '정책모기지 대출' 급증

통화 긴축기 부채축소 기회 날려

저금리 대출 차환 리스크도 본격화

부채우려 금리 인하도 인상도 못해

수도권 공급 늘려 상승 기대 낮춰야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아파트일대. 연합뉴스




최근 늘어난 가계부채는 집값 고점이 형성된 문재인 정부 말기와 달리 대부분이 은행 주택담보대출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8월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사상 최대인 7조 원 증가해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 폭인 6조 2000억 원을 웃돌았다. 금리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용대출까지 받는 ‘영끌’은 사라졌으나 정부가 공급한 ‘정책 모기지’를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난 결과다. 사실상 정부가 글로벌 긴축 기조에 역행해 고금리 레버리지 투자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경착륙을 우려하면서 주택 매수 심리를 되살리기 위해 여러 처방전을 한꺼번에 투여했다. 연초부터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등을 푸는 등 각종 규제를 해제한 데 이어 소득도 보지 않고 시중보다 낮은 고정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시행했다. 당국이 직접 나서서 은행 가산금리까지 낮췄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3.50%에서 금리 인상을 멈췄다. 결국 가계가 대출받아 집을 사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의도한 대로 부동산 경착륙 우려는 줄었다.

정부가 예상치 못한 것은 가계대출의 빠른 증가 속도다. 올 5~8월 평균 주담대 증가 폭 6조 원은 초저금리로 가계대출이 급증했던 2020~2021년보다 많다. 당국은 지난달에서야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를 문제 삼으면서 출구전략을 마련했지만 한 번 되살아난 주택 매수 심리가 진정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미 일반 개별 주담대 증가 규모는 정책 모기지를 앞질렀다. 집값이 반등한 만큼 주담대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통화 긴축기에 거쳐야 하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결과론적으로 건너뛰게 됐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2분기 101.7%로 1분기(101.5%)보다 높아져 1년 만에 반등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부채 비율은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4위다. 한은은 지난달 가계부채 증가를 금융 시스템 취약성·리스크 요인으로 꼽는 등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향후 디레버리징이 이뤄질 가능성도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가계의 실물 자산 비중이 높아 자산 가격 하락 시 주택 처분 압력이 커지면서 역전세난 등 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취약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자산(5억 4772만 원)에서 실물 자산(4억 2646만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7.9%에 이른다. 가계부채가 많은 주요 5개국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는 실물 자산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정부도 부동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 이번 대응에서 드러났다.

특히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가계가 늘면서 금융 시스템과 자산 시장 간 연계성이 더 강화된 것도 부담이다. 집값이 떨어졌을 때 금융과 실물경제가 받는 충격이 커진 만큼 디레버리징은 더 어렵게 됐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고 무주택자도 전세보증금 비중이 높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면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디레버리징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가계부채 리스크를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문제는 고금리가 길어질수록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커진다는 점이다. 이미 2020~2021년 저금리 국면에서 이뤄진 대출 차환 리스크가 올해부터 본격 반영되면서 민간소비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정부나 한은이 꿈꾸는 디레버리징은 분자인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묶어놓고 분모에 있는 GDP를 키우는 것이지만 고금리 국면에서 이는 쉽지 않다. 금리 인하는 부채 급증 가능성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 부채 때문에 금리를 올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정부로서는 부동산 경착륙 위기를 넘겼지만 가계부채라는 지병은 더 키운 셈이 됐다. 디레버리징 기회를 놓친 만큼 대내외 충격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에는 부채가 줄어드는 게 당연한데 통화정책의 한계에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도 커지면서 수요자들이 ‘지금 집을 사야 한다’는 판단으로 대출을 끼고 집을 사고 있다”며 “정부가 금리 통제를 중단하고 수도권 핵심지에 공급을 늘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를 꺾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