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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장례비도 없어"…국민연금까지 담보로 빚내는 노인들

■국민연금 대출 '실버론' 급증

상반기 263억…대출건수 10%↑

실버론으로도 자금구멍 못 메워

2금융권·대부업에 손 내밀기도

저축銀 연체율 60대가 가장 높아

급증하는 청년연체 대책도 절실

"저소득계층 소득기반 확충 필요"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파지를 모은 리어카를 끌고가고 있다. 연합뉴스




“어려운 세월 수십 년 함께했는데… 아내 보내줄 돈도 없어 대출을 받게 된 게 서럽고 아내에게 미안하죠.”

서울에 거주하는 67세 자영업자 김모 씨는 올해 초 자신의 국민연금을 담보로 1000만 원의 ‘노후긴급자금(실버론)’ 대출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사망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가진 돈으로는 장제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무사히 장례를 마치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급전이 필요해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대부 업체, 2금융권의 문을 두드리는 노년층이 늘고 있다. 관련 연체율 역시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금융권에서는 노인·청년 등 소득 수준이 낮은 연령대의 소득 전반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15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 들어 6월 말까지 국민연금 수급자에 나간 실버론 대출 규모는 총 262억 8550만 원 규모로 집계됐다. 실버론은 국민연금이 긴급 자금을 저금리로 제공하는 복지성 대출 상품이다.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라면 특정 목적에 한해 본인의 연간 연금 수령액의 2배 이내에서 최대 1000만 원까지 실버론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실버론 대출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 늘었다. 대출 건수로 따지면 지난해 상반기 3793건에서 올해 상반기 4189건으로 약 10%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연 2.5%에 미치지 못하던 실버론 금리가 올해 상반기에는 최고 연 3.97%까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실버론은 매 분기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에 연동해 변동금리를 적용하는데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실버론 금리 역시 연 3%대 후반으로 급등했다.

문제는 실버론만으로 자금난을 메울 수 없게 된 노인들이 2금융이나 대부 금융에까지 떠밀려 대출을 받은 뒤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상위 5개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의 60대 이상 개인신용대출 차주 연체율은 5.9%를 기록했다. 전년 말의 7.2%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대출 추이로 보면 5개 저축은행의 60대 이상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전년 말 기준 1조 3002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말 1조 1724억 원으로 줄어든 대신 주요 대부 업체 3곳(리드코프·태강대부·에이원대부캐피탈)에서는 잔액이 312억 원에서 318억 원으로 늘어나는 등 일부가 대부 업체로 유입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퇴직금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발판 삼아 자영업에 나선 노년층을 고려하면 연체율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9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 금융권에서 60대 이상 차주의 가계 및 개인사업자 대출 합산 연체율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0.9%로 지난해 상반기 말 대비 0.5%포인트 올라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상승 폭이 컸다. 이 같은 연체율은 30대 이하 청년층(0.6%)이나 40~50대 중장년층 연체율(0.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단순한 금융 대책보다도 소득 취약 계층의 소득 기반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은 추산 결과 50대에 4700만 원까지 상승했던 1인당 가계대출 차주 소득은 60대로 접어들면 4100만 원으로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고령층의 대출 확대, 부실 위험 억제를 위해서는 비은행권의 신용 리스크 관리 체계 정비나 개인사업자 대출 여신 심사 강화 등뿐만 아니라 고령층의 소득 기반 확충 등 지원책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며 “고령층의 소득 보전을 위한 연금제도 등 사회경제적 차원의 근본적 대책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노년층에 더해 청년층의 신용 리스크를 억제할 수 있을 만한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상반기 상위 5개 저축은행 개인신용대출의 20대 이하 차주 연체율 역시 60대 이상 다음으로 높은 5.3%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0대 이하 차주의 연체율은 2019년 말 2.0%에서 2020년 말 3.1%, 2021년 말 4.5%, 지난해 말 4.7% 등으로 4년 연속 높아지는 추세다. 만 34세 이하 저소득·저신용 청년에게 나가는 햇살론유스에서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해 정부가 대신 갚아준 비율도 2020년 0.2%에서 올해 상반기 말 7.3%로 크게 올랐다. 최대 100만 원 한도로 급전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에서도 20대 이하 청년 차주의 이자 미납률은 지난달 초 기준 27.4%로 전체 미납률 16.4%보다 1.5배 이상 높았다. 저소득·저신용 청년 4명 중 1명은 몇 만 원에 불과한 소액생계비대출 월 이자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청년층에서는 최근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잠재 취약 차주도 지난해 17.2%에서 올해 상반기 말 17.8%로 여타 연령층 대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오 의원은 “청년·노인 세대 등에서 연체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소득이 예상보다 줄었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금융뿐만 아니라 고용·복지 등 여러 관점에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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