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샤인볼트’ 외에도 메모리 패러다임을 바꿀 다양한 차세대 메모리를 발표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초고용량·초고속 제품들이다. 이 제품군을 앞세워 1993년부터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업계 선두를 수성했던 삼성전자가 향후에도 리더십을 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현지 시간) 미국 실리콘밸리 매커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 메모리 테크 데이 2023’ 행사에서 삼성 메모리 사업을 총괄하는 이정배 사장은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3D D램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는 10㎚(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하 D램에서 3D 신구조 도입을 준비하고 있고 이를 통해 단일 칩에서 100Gb(기가비트) 이상으로 용량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이 관심을 끄는 것은 삼성전자가 구체적인 3D D램 용량과 선폭을 대중에 공개한 적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장의 말대로 100Gb 이상 용량을 가진 3D D램이 양산되면 현재 단일 D램 최대인 32Gb 제품의 3배를 웃도는 ‘괴물 칩’이 된다. 삼성의 최초 양산으로 D램 업계의 이정표와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는 셈이다.
이러한 혁신은 3D D램의 독특한 구조가 있기에 가능하다. 기존 D램은 기억 장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를 평면에만 수백억 개씩 욱여넣어야 했다. 반면 3D D램은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를 마치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게 핵심이다.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배치 공간을 여유 있게 확보하며 용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3D D램은 기존 D램과 구조가 아예 달라 기술 난도가 상당히 높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중국 CXMT 등 라이벌 회사들도 도전 중인 3D D램은 본격 양산이 2020년대 후반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삼성전자 특유의 ‘초격차’ 정신과 메모리 1위 업체의 자본력이라면 양산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는 3D D램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실험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D램으로 중앙처리장치(CPU) 주변에서 빠르게 연산을 도와줄 수 있는 GDDR7 D램, 하이-K 메탈게이트(HKMG) 공정을 메모리 업계에서 최초로 적용해 누설 전류를 최소화한 LPDDR5X, 메모리 확장성에 주안점을 둔 CXL 메모리 모듈 등을 소개했다.
1000단 낸드플래시를 향한 목표와 기술 개발 계획도 설명했다. 이 사장은 “셀의 평면적과 높이를 감소시켜 칩의 몸집을 줄이고 단수를 높이는 핵심 기술인 신개념 채널 홀 식각으로 1000단 낸드 시대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300단 이상의 9세대 낸드플래시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은 9세대 낸드에서도 두 번에 나눠 만든 뒤 한 개 칩으로 결합하는 더블스택 기술을 활용한다. 경쟁사가 300단 이상부터는 3개 층으로 나눠 생산한 후 쌓는 ‘트리플 스택’을 도입한 것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같은 단수를 더블스택으로 구현하면 생산 시간과 공정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이 사장은 “삼성은 새로운 구조와 소재를 메모리 제조에 도입해 초거대 AI 시대에서 직면한 난제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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