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가 붙잡고 있는 동아줄마저 끊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루프홀(빠져나갈 구멍)을 없애야 한다”고 발언한 며칠 후. 사석에서 만난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면서도 “예외를 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너무 나간 발언 같다”며 다소 박한 평을 내놓았다.
그는 대표적인 DSR 예외 항목인 전세대출을 예로 들었다. 명목상으로는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찾는 돈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사업 자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신용대출의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업자로서는 당장 쓸 돈을 마련할 때 전세대출만한 게 없는데 창구 문턱을 높이면 이들의 생계를 더 옥죌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가계부채의 뇌관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다중 채무자들이 안은 빚”이라면서 “부채를 줄이겠다며 돈줄을 틀어쥔다면 취약차주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고 곧 뇌관에 불이 붙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만의 생각은 아니다. 당국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가계부채의 공포가 과장됐다”는 목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불어난 빚의 위험을 간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문제를 확대해석해 과잉 대응할 경우 되레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빚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되 기존의 빚을 일거에 줄이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국의 또 다른 인사는 “가계부채의 차주 구성을 뜯어보면 상대적으로 고신용자가 많아 당장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경제성장 속도에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관리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갈수록 불어나는 부채를 손 놓고 보고 있을 일은 아니다. 다만 서두르다 되레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흘려듣기도 어려워 보인다. 부채의 위험을 보다 면밀히 따져보고 단계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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