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둔화로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나던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본격적으로 반등을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고객사의 ‘큰손’인 애플 아이폰 패널 공급을 국내 업체들이 독점하며 실적 개선의 신호탄을 쐈다. 여기에 수요 둔화 기간 이뤄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의 체질 개선도 힘을 보태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4분기 삼성디스플레이는 2조 원 넘는 영업이익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LG디스플레이(034220) 역시 1000억 원 안팎의 흑자를 내며 7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할 것으로 추정된다.
4분기 실적 개선의 핵심은 ‘애플 효과’다.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아이폰15의 패널 물량 전량을 국내 업체들이 공급하고 있다. 출시 직후 중국 판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최근 4분기 연말 성수기 효과로 아이폰 패널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에 따르면 최근 4개월간 아이폰15 디스플레이 패널 출하량은 아이폰14 출시 이후와 비교하면 24% 증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전 모델에 OLED 패널을 공급하고 LG디스플레이는 프로와 프로맥스 모델 패널을 책임진다. 올해 9월 기준 아이폰15 패널 공급 점유율은 삼성디스플레이가 74%, 나머지 26%를 LG디스플레이가 차지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BOE가 기술 한계로 아이폰 패널 물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패널 공급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빠르게 이뤄진 사업 구조 변화도 실적 개선에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LG디스플레이는 OLED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신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5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차량용 디스플레이 수주 잔액이 올해 20조 원 초반을 기록할 것”이라며 “2025년까지 30% 성장을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신규 고객사도 올해 대비 3배 증가한 9개까지 확대되며 3년간 연평균 2000억~3000억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실적 발표를 통해 “IT용 OLED, 차량용,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등 신사업을 확대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확장현실(XR) 기기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 ‘올레도스(OLED on Silicon·OLEDoS)’ 개발을 위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내부 거래를 체결했다. 올레도스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OLED 소자를 입혀 전력 소모와 무게를 낮추는 제품으로 기술력 강화를 위해서는 반도체 공정 기술 활용이 중요하다. 미국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기업 이매진 인수도 올해 마무리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OLED가 최초로 탑재된 애플 태블릿PC 출시라는 호재가 남아 있다. 4000만~5000만 대 중 1000만 대가량 OLED 전환이 전망되고 이 물량 역시 LG디스플레이 600만 대, 삼성디스플레이 400만 대로 전량 공급이 점쳐진다. 양사는 6세대 라인에서 애플 아이패드용 OLED를 본격적으로 양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폰 대비 출하량은 적지만 아이패드 면적이 아이폰 대비 4~5배 수준이라는 점에서 IT용 OLED 시장은 빠르게 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궁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출하량과 화면 크기, 기술 전환을 고려하면 아이패드의 OLED 전환 파급효과는 크다”며 “아이폰 규모 이상의 새로운 시장이 한 개 더 생기는 것과 비슷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