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차주의 금리 부담 완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금리 변동이 낮은 ‘신잔액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을 출시하기로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대출금리 기준으로 쓰이는 신규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가 올해 최고치를 경신해 차주들의 금리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까지 신잔액 코픽스에 기준금리가 연동되는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하기로 한 8개 은행(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카카오·부산·광주)의 관련 상품은 8개에 불과했다. 이들이 판매하는 180여 개의 신용대출 상품 가운데 신잔액 코픽스 연동 상품은 약 4%에 그친 것이다.
당초 은행들이 관련 상품 취급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앞서 금융 당국과 은행권은 7월 초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면서 “은행들이 변동성이 작은 신잔액 코픽스와 연동되는 상품을 개발하고 하반기 중 본격 출시·운영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은행들의 신용대출 상품 취급 행태가 차주에게 리스크를 전가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국내 은행 신용대출 상품의 86%는 기준금리를 은행채나 CD금리에 연동하고 있었는데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됐던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은행채 1년물의 표준편차는 1.07에 달했다. 표준편차가 클수록 변동성이 크다. 반면 같은 기간 신잔액 코픽스의 표준편차는 0.8로 신규 코픽스 표준편차 1.01보다도 작았다.
시장금리는 똑같이 올랐지만 실제 대출금리는 상품별 기준금리 유형에 따라 은행채, 신규 코픽스, 신잔액 코픽스 순으로 상승했던 셈이다. 이달 15일 기준으로도 은행채 1년물(무보증·AAA, 5대 신평사 평균) 금리는 4.10%로 10월 신잔액 코픽스 3.33%보다 0.77%포인트나 높다.
하지만 올해 9월 말까지 신잔액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하기로 한 은행들은 ‘면피용’ 상품을 출시하는 데 그쳤다. 우리은행은 ‘우리WON 갈아타기 직장인대출’에만 신잔액 코픽스를 연동했는데 이 상품은 기존 대출을 대환하려는 직장인만 이용이 가능해 접근성이 낮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타 상품에도 (신잔액 코픽스) 적용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3분기까지 관련 상품을 출시하기로 한 광주은행은 아예 출시조차 하지 않았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이달 말과 내년 1분기 중에 관련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 이 상품을 출시하기로 한 국민·농협·기업·카카오뱅크 등 4개 은행에도 아직까지 신잔액 코픽스가 연동된 상품은 전무한 상태다. 당초 연말까지 출시를 예정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출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금리 변동 폭이 높은 신용대출 상품을 위주로 판매를 이어가는 가운데 15일 발표된 10월 코픽스는 연중 최고치를 경신해 차주들은 또 한 번 금리 인상을 맞닥뜨리게 됐다. 특히 신규 코픽스는 3.97%로 신잔액 코픽스(3.33%)보다 0.64%포인트나 높았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신잔액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 상품 출시 등을 비롯해 은행들이 상반기에 발표한 개선안 결과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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