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리에 내걸린 ‘블랙프라이데이’ ‘코리아세일페스타’ 포스터를 보면서 연말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80% 할인, 1+1 등의 문구가 올 한 해 고물가로 힘겨웠던 마음을 달랜다. 할인율에 혹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들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할인 전에 먼저 가격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달 말부터 전국 숙박시설에서 3만 원을 깎아주는 숙박페스타가 시작되자 다수 업소가 성수기인 9월보다도 가격을 인상했다. 한 유명 치킨 업체는 올 4월 치킨 값을 올리곤 두 달 뒤 할인을 진행해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회사들은 다를까. 국내 8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이달 20일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만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덜기로 약속했다. 구체안은 연말께 나올 예정이지만 금융권에서는 그 규모와 방식이 2조 원 수준의 ‘캐시백’ 형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자가 높아진 만큼 낸 이자를 돌려주는 식이다. 금융판 ‘블랙프라이데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할인 전에 가격을 올리는 것처럼 이미 금리도 높아질 만큼 높아졌다”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은행들은 또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손해 보는 상생’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은행들은 올해 대출 가산금리를 올릴 만큼 올렸다.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평균 가산금리는 9월 신규 취급분 기준 3.10%였다. 7월 3.28%에 비하면 소폭 줄었지만 평균치는 지난해 12월 2.87%로 시작해 이미 7월까지 오름세를 보였다.
올 초 ‘은행권 돈 잔치’ 비판에 마련한 개선안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당시 은행들은 금리 인상기 차주 부담을 줄이겠다며 변동성이 적은 금리를 연동한 신용대출 상품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관련 상품을 하나도 내놓지 않은 은행도 있다. 또 다른 은행은 ‘대환 전용’ 상품 하나만 겨우 마련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올해 내내 동결됐지만 대출 금리가 올랐던 것도, 은행들이 3분기까지 역대 최대 이자 수익을 낸 것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조만간 금융권이 내놓을 ‘조 단위 상생안’의 진정성을 온전히 믿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금융권이 내놓는 ‘통 큰’ 상생안이 조삼모사 식 할인 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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