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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지르는 듯…여든의 열정 담은 해바라기

◆'구상 대가' 전명자 개인전

오로라 이어 금빛 해바라기 집중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50점 선봬

"목숨을 걸어서 완성해 낸 작품"


구상회화는 현실에 실재하는 대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세계를 그대로 사진처럼 모사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시각으로 변형해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구상이다. 한국 근대 미술사는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과 한국의 대표 여류 작가인 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걸출한 구상 회화 작가를 배출했으나 이후 그 인기가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 지금의 미술시장은 이우환, 김창열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회화가 가격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명자 화백이 자신의 작품 ‘금빛 해바라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금빛 해바라기, 2020 227.3cmX181cm. 사진=서지혜 기자




전명자 화백 /연합뉴스


하지만 여전히 성실하고 묵묵히 작가의 창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구상 작품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컬렉터도 많다. 전명자(81) 화백은 구상 작품을 좋아하는 컬렉터들이 유영국, 천경자의 명맥을 이을 다음 작가로 주목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전명자 개인전 '재현과 현전(現前)의 경계에서’는 신작을 포함한 총 50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지난 30 여년간 오로라를, 그리고 최근 10여 년간 금빛 해바라기를 그리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 왔다. 3년 만에 열린 이번 개인전에는 1960~1990년 대 초기작과 함께 최근 3~4년간 가장 집중한 금빛 해바라기 대작도 전시된다.

작가는 1990년대 서울여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파리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파리여행’, ‘자연의 조화' 등 주로 풍경화를 그리던 작가는 노르웨이 여행 중 전환기를 맞는다. 쉽게 볼 수 없다는 오로라를 보고 ‘이 그림을 그리도록 선택을 받았다’고 느낀 것. 그때부터 작가는 쉼 없이 오로라만 그리기 시작한다. 작가의 오로라는 푸른빛, 초록빛 색만 나열하는 방식은 아니다. 작품 속에는 오로라와 함께 작가가 행복을 느낀 삶의 흔적이 담긴다. 마을과 강, 기와지붕과 기둥, 분수와 놀이터 등이 푸른 빛 오로라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오로라를 넘어서. 사진 제공=선화랑


캔버스 속 소재가 하늘(오로라)에서 땅(해바라기)으로 내려온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해바라기는 노르웨이와 반대되는 지역,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발견한 또 다른 선물이다. 뜨거운 태양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해바라기는 오로라와 모든 면에서 상극이다. 하지만 태양의 ‘빛’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전 화백의 해바라기는 반 고흐의 작품보다 색이 영롱하고 더 반짝인다. 본래 갈색으로 표현돼야 할 해바라기의 중앙 부분을 금색으로 표현해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고흐의 해바라기와 나의 해바라기는 다르다”며 “금빛으로 가늘게 그린 해바라기는 영원한 빛의 근원인 태양의 아바타”라고 설명했다. 금빛 해바라기는 역시 오로라 작품처럼 풍경과 함께 놓인다. 해바라기 틈 사이로 보이는 화목한 가족, 사랑스런 연인들, 연주자들, 꽃과 나무 등은 감상자로 하여금 작가의 열정적이면서도 평온하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전명자, 금빛해바라기. 2023. 사진제공=선화랑


이번 전시는 작가의 해바라기 작품을 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노란색’과 ‘금빛 가루’ 때문에 최근 작가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의 해바라기는 바람에 휘날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며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완성해낸 해바라기”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작가는 마음을 다잡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제 해바라기 그리기는 그만 두고 다시 오로라로 돌아가려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올해 겨울 마지막으로 오로라의 나라 노르웨이로 떠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생을 걸고 그린 뜨거운 여름과 따듯한 겨울의 작품들의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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