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가 10월 출시한 ‘마롱 헤이즐넛 라떼’. 출시 첫날 주문이 쇄도하며 7만 잔이 팔렸다. 주문 애플리케이션에는 ‘고객님의 성원에 힘입어 일부 매장은 음료가 품절됐습니다’라는 공지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스타벅스 임직원들은 신제품이 곧바로 히트작이 되자 반가운 소식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 같은 반응을 보일 때 기쁨보다 안도감을 더 크게 느낀 이가 있었다. 바로 올 7월 스타벅스코리아에 합류해 해당 신제품 출시를 주도했던 최현정 스타벅스코리아 식음개발담당이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일한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지만 최 담당은 식음료 업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히트 메이커’다. 스타벅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몸담았던 맥도날드코리아·SPC·썬앳푸드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히트 메뉴를 만들었다. 최 담당 덕분에 식음료 업계에 ‘메뉴 개발자’라는 직업이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환경 변화는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최 담당에게도 큰 도전이다.
5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코리아 본사에서 인터뷰를 위해 최 담당을 만났다. 스타벅스에서는 ‘새내기’지만 스타벅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초록색 에이프런이 꽤 잘 어울렸다. 최 담당은 “스타벅스에 합류한 뒤 1~2개월가량 신제품 출시 라인업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며 “제품명을 바꾸고 출시일을 바꾸는 것도 메뉴 개발자의 일”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던 최 담당은 이미 아홉 살 때 도넛 반죽을 튀기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애정은 더 커졌다. 결국 일찌감치 요리로 진로를 정한 최 담당은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가 세계 3대 요리 학교 중 하나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았다.
요리 학교의 하버드라 불리는 CIA는 촘촘한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요리의 기본이 되는 기술부터 재료 손질, 수율뿐 아니라 조리 수학까지 가르친다. 열정에다 버티는 힘까지 있어야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곳이다. 최 담당은 아시아인의 비중이 전체 학생의 20%도 채 되지 않던 시기의 CIA 수련 시절을 회고하며 요리사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최 담당은 “킬로그램(㎏)·온스(Oz)·파운드(lb)뿐 아니라 다양한 단위로 재료를 손질하는 법을 배웠다”며 “나라별로 특징이 있는 요리와 나중에는 디저트나 빵도 가르쳐 요리의 기본기를 쌓았다”고 말했다.
최 담당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CCA(California Culinary Academy Le Cordon Bleu)에서도 수학했다. 재학 중 자원봉사까지 지원하며 매일 칼질을 익혔다. 아픈 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오픈핸드 프로젝트’를 기회로 양파·당근·셀러리를 하루에 두 박스씩 썰었다. 또 생소한 재료들을 익히기 위해 본인만의 식재료 도감을 매일같이 작성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메뉴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일터는 프랜차이즈 기업 썬앳푸드였다. 최 담당은 “당시 메뉴 개발은 요리사 출신이 맡았고 기획은 마케팅에서 담당하는 등 통일되지 못한 면이 있었다”며 “누구한테 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메뉴 개발을 하는 식으로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썬앳푸드에서 일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봄날의 보리밥’이라고 했다. 모던 한식 레스토랑을 콘셉트로 삼았던 곳으로, 한 끼에 6000원짜리 보리밥을 팔았고 회전율이 낮았다. 최 담당에게 내려진 특명은 ‘매출 150% 증가’였다. 최 담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릇 교체였다. 이후 타깃 고객층을 정하고 메뉴을 손봤다. 그 결과 점심뿐 아니라 저녁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어 최 담당은 ‘비스트로 서울, 모락’을 오픈하며 한식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 메뉴부터 매장 인테리어까지 담당한 그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 한식당을 맡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잘해내고 싶었다”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곳으로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코리아에서 메뉴를 개발할 당시에도 히트작을 냈다. 시그니처버거·슈비버거 등이다.
어떤 일이든 성공한다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메뉴 개발자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묻자 최 담당은 “메뉴 개발자는 요리사 중에 최상위 직급”이라며 “시즌 메뉴로 어떤 것을 개발할지,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 현재 주방 인력으로 해당 메뉴 개발이 충분할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최 담당의 고민 방식은 스타벅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 7월 스타벅스에 합류한 뒤 최 담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출시 라인업을 바꾸는 일이었다. 통상적으로 스타벅스는 신메뉴 출시일이 연초에 정해진다. 하지만 최 담당은 시즌 메뉴들의 출시일과 메뉴명을 과감히 바꿨다.
대표적인 예가 ‘마롱 헤이즐넛 라떼’다. 이 상품은 6년 전 ‘돌체 라떼’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됐다. 하지만 최 담당은 직관적이지 않은 제품명을 바꿨을 뿐 아니라 ‘마롱(밤)’ 맛을 첨가해 달콤함을 더했다. 이 커피는 판매 시작 이틀 만에 1주일 동안 판매할 원·부재료가 소진돼 품절됐다. 최 담당은 “재료 소진으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의 예감은 ‘딸기 라떼’에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딸기 라떼는 흰 우유 위에 딸기 과육이 층을 이루는 음료다. 2019년 출시 이후 봄 스테디셀러 음료로 자리 잡아 올봄에만 200만 잔 넘게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누적 판매량은 530만 잔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최 담당은 딸기 제철이 봄이 아니라 11월이라는 데 주목했다. 마트에서 딸기 판매가 시작되는 시점은 11월 20일 전후다. 이에 최 담당은 딸기 라떼 출시일을 바꿨고 출시한 지 2주 만에 100만 잔 돌파를 앞두고 있다. 최 담당은 “보지도 못한 것을 내놓는 게 예술가의 영역이라면 익숙함에 20%가량 새로운 것을 추가해 내놓는 게 메뉴 개발자의 일”이라고 말했다.
최 담당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북미 지역에서만 판매하던 트렌타 사이즈(887㎖)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한국이 최초다. 트렌타 사이즈는 출시 보름 만에 누적 판매량 40만 잔을 넘겼고 결국 스타벅스는 한정 판매하려던 계획을 접고 상시 판매로 전환했다.
최 담당은 특화 점포 전용 상품 출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포로는 ‘더제주송당파크R점’을 꼽았다. 매장 오픈 당시에는 여느 점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제주 동쪽 송당 동화마을까지 찾아오는 고객들은 ‘식욕’에 대한 욕구가 클 것이라고 판단해 일반적이지 않은 메뉴들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 결과 ‘제주팔삭 셔벗 피지오’ ‘아이스크림 레드 애플 피지오’ ‘클래식 밀크티 블렌디드’ 등 리저브 특화 음료 9종과 ‘흑임자 품은 큐브 브레드’ ‘돌보로 마스카포네 브레드’ 등 특화 푸드를 만들어냈다. 지역색도 입혔다. 제주의 상징인 ‘돌’을 빵 제품에 구현해냈다. 현재 이 지점은 제주 동부 지역 일반 매장보다 매출이 4배 많다.
최 담당이 앞으로 스타벅스에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그는 음료나 푸드 부문에서 스타벅스가 모두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최 담당은 “스타벅스가 국내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음료에서도 가장 맛있는 커피, 푸드에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