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환경이 안정적이었던 지난 10년과 다른 상시적 위기의 시대가 됐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월 열린 올해 첫 사장단 회의,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에서 ‘상시적 위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변화와 혁신을 위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고 힘줘 말했다.
신 회장이 5일 부산 강서구 미음동 국제산업물류도시 롯데쇼핑 고객풀필먼트센터(CFC) 착공식에서 ‘롯데의 새로운 미래’를 외친 것은 이 같은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가 2030년까지 총 1조 원을 들여 전국에 6개의 CFC를 짓기로 한 것은 단순히 경쟁사 대비 비교 우위의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상시적 위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결단이라는 것이다. 신 회장은 앞서 신년사를 통해서도 “영구적 위기 시대의 도래는 우리가 당연하게 해왔던 일과 해묵은 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며 “혁신을 통해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 롯데’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롯데는 한때 ‘유통 공룡’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장 내 위상이 절대적이었지만 유통 시장의 중심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롯데의 입지는 위협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신흥 강자로 급부상한 쿠팡은 고물가·고금리 속에서도 ‘나 홀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유통 강자인 롯데는 매출이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올해 1~3분기 누적 기준 쿠팡의 매출은 23조 1767억 원, 영업이익은 4448억 원이다. 같은 기간 롯데쇼핑 매출이 10조 9229억 원, 영업이익이 306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영업이익은 4분의 3 수준인 셈이다.
롯데가 강점을 지닌 백화점 부문만 따로 떼 놓고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개점해 세를 불리며 전체 백화점 매출 1위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의미 있는 타이틀을 신세계와 현대에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백화점에는 ‘더현대서울, 최단 기간 1조 매출 달성’이라는 기록을 내줬고 조만간 신세계백화점에는 ‘강남점의 연매출 3조 원 돌파’ 타이틀을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 마트와 슈퍼가 통합 소싱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홈쇼핑의 경우 올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처럼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신 회장이 집어 든 승부수는 과감한 투자와 국내외 적극적 협업, 해외시장 공략이다. 그는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앞장 서 롯데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의 글로벌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손잡고 2030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해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에 6개의 CFC를 건립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통해 온라인 그로서리(신선식품) 시장에서 쿠팡·컬리 등과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2025년 말을 기점으로 부울경 유통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점차적으로 전국 점유율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신 회장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그는 9월 베트남에서 열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그랜드 오픈식 직후 취재진과 만나 “우리가 핵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앞으로 유통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롯데는 특히 베트남 호찌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회사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동시에 유통 명가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내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국내외에 판을 벌여 놓은 만큼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롯데는 롯데건설을 비롯한 전 계열사의 역량을 동원해 호찌민에서 투티엠 에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이 사업은 투자 비용만 9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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