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2024년 새 해가 뜬지도 벌써 보름이나 지났습니다. 올해 계획 근사하게 잘 세우셨고 실천에도 문제 없으신가요?
오늘은 우리나라 양대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000660)의 새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SK하이닉스는 올해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어디에 어떤 투자를 해서 무슨 제품을 생산할까. 흥미로운 지점들을 몇 가지 발견해 독자님들과 자세히 짚어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길지만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공정 전환 이슈부터 시작합니다.
■ 공정전환 : 中 우시 공장 1a + 이천 1b D램
*용어 설명
1a = 10나노급 4세대 D램 (2021년 첫 양산)
1b = 10나노급 5세대 D램 (2023년 5월 개발 완료)
올해는 어둡고 힘들었던 D램 불황 터널을 지나 D램 회복기에 접어드는 시기라는 전망이 많죠. 그래서 SK하이닉스도 반등을 준비합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무리한 신규 투자보다는 지난해 감산으로 낮춰뒀던 가동률을 끌어올리면서 회복에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을 짰습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감산 축소에 관한 메시지를 시장에 남기기도 했죠. 곽 CEO는 최근 CES 2024 간담회에서 "D램 시황 개선 조짐으로 일부 제품은 최대한 생산을 하는 등 1분기에 변화를 줘야할 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다양한 경영 계획 중에서도요. 저는 올해 키워드를 단연 '공정 전환'으로 꼽습니다. 기술이 진보하는 만큼 최신 D램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죠. 가동률 회복도 중요한데 구형에서 신형 제품 제조라인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지는 것이 상당히 볼만한 포인트입니다.
그 중 가장 재밌는 곳이 중국 우시 공장입니다. 2006년부터 가동한 우시 공장은 12인치 기준 월 약 20만 장의 D램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팹입니다. 이곳은 마치 하나의 팹처럼 운영되지만 2006년부터 운영된 'C2', 2019년 준공한 'C2F' 등 크게 2개로 나눌 수 있는데요. 현재까지 두 개 동에서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10나노급 2세대(1y), 3세대(1z) D램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원조 우시 공장 격인 C2를 연내 10나노급 4세대(1a) D램 라인으로 바꾸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SK하이닉스의 1a D램 공정 전환은 빠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요즘 SK하이닉스가 가장 힘주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신제품 HBM3E(5세대 HBM)도 1a D램을 12단으로 쌓아 만드는 것이고요. AI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2019년 개발한 ‘레거시’ 1z보다는 최신 제품인 1a D램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우시의 공정 전환도 이 일환입니다.
이 의사결정 과정을 좀 더 살펴봅시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극자외선(EUV)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지난 2019년부터 중국 땅에 ASML의 EUV 노광기 반입을 불허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 움직임을 압박하고 있죠.
이에 따라 SK하이닉스 우시 D램 공장 운영 계획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SK하이닉스는 1a 제품부터 EUV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시 공장에는 EUV 노광기를 한 대도 설치할 수 없게 됐으니 규제 준수를 위해서는 공정 업그레이드가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지난해 SK하이닉스에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부여하며 중국 공장에도 18나노 이하 D램 제조 장비를 들일 수 있게 허가했지만 EUV 장비 반입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간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짜놓고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 트랙' 전략으로 중국에선 EUV 없이 심자외선(DUV) 노광을 쓰는 이른바 멀티 패터닝으로 1a D램을 만드는 방법 △최악의 경우 아예 우시 공장 문을 닫는 방법까지 고려됐다고 하죠.
결국 SK하이닉스가 선택한 건 '운송'입니다. 우시 라인에서 1a D램 공정을 일부 진행하되 이 웨이퍼를 본사인 이천 캠퍼스로 가져와 필요한 EUV를 적용하고, 다시 우시로 보내 공정을 마무리하는 고육지책입니다.
1a D램에는 한 개 층에만 EUV 공정을 씁니다. 경영진들은 비행기를 띄우더라도 비용 상승과 오염(파티클) 보호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고, M16에 있는 EUV 기기들로도 병목 현상 없이 괜찮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10여년 전인 2013년 우시 공장에 큰 화재가 났을 때도 SK하이닉스는 이 방법을 써서 사상 초유의 수급 문제가 일어날 뻔한 위기를 막아낸 경험 있습니다. 과거 사례를 거울 삼아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전략도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다음 세대인 1b D램입니다. 1b D램에는 다수 레이어에 EUV가 적용되죠. 지난해 5월 공식적으로 개발완료 소식을 알렸고 올해 D램 시장 상승세에 맞춰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갈텐데요.
현재까지는 비행기를 띄우는 방법으로는 이윤 구조를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과연 1b D램 공정 전환을 할 시점에 미중 분쟁이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규제를 준수하는 범위에서 또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자, 그럼 1b D램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D램은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계획을 좀 더 들여다 보죠. 1b D램의 경우 연내 이천 캠퍼스 내 신규투자·공정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취재를 종합해보면 올해 이천의 새로운 1b D램 생산 라인을 월 4만 2000장 규모까지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기존 M14 라인에 남은 1y, 1z D램 라인을 1b 라인으로 업그레이드할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의 자료로 SK하이닉스의 올해 테크 전환 흐름을 살펴보면요. 올해 1a와 1b D램의 양산 비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4분기에는 1a D램 생산 비율이 33%, 1b D램은 1%에 불과했지만 올해 4분기에는 1a D램 42%, 1b D램이 12%까지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1a D램 이상 비율이 절반 이상인 54% 수준이죠.
이 수치는 올해 삼성전자(005930) 1a+1b 생산 비율(41%)보다 높고 1β(1b에 준함) D램에도 EUV를 쓰지 않는 마이크론(78%) 합산 비율보다는 낮습니다.
■HBM: 올해 '월 10만 장' 이상 생산 능력 목표
요즘은 'SK하이닉스=HBM'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난해 독자적 HBM 기술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의 스타가 됐습니다. SK하이닉스의 활약으로 세계에서 단독으로 HBM용 CMP 슬러리를 공급하는 솔브레인(357780), 4세대(HBM3) MR-MUF 공정에서 칩 적층 장비를 생산하는 한미반도체(042700) 등 협력사들도 참 많은 조명을 받았습니다. SK하이닉스 HBM 사업은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SK하이닉스가 HBM에 진심인 이유'에도 자세히 설명돼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SK하이닉스는 올해 최신형 5세대 HBM(HBM3E) 양산에 들어갑니다. 특히 세계 1위 AI용 연산장치 엔비디아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HBM3E 양산 속도를 더욱 올려야 하는데요. 올해 HBM3E 생산 능력 확대의 중요한 체크 지점은 청주공장입니다. M15.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의 가장 최신형 공장이죠. 여기에 새로운 HBM 라인을 증설합니다.
사실 그간 SK하이닉스 메모리 사업은 이천은 D램, 청주는 낸드플래시. 이게 마치 '국룰'처럼 구분이 돼 왔는데요. 본사인 이천 중심으로 전개되던 HBM 사업이 워낙 잘 풀리다 보니 그 위세가 청주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M15는 월 20만장 정도 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초대형 팹이지만 낸드 시장 둔화 등 여러 이유로 현재 4분의 1 수준인 5만 장 정도 낸드 라인만 꾸려져 있는데요. 이 공장의 유휴 공간을 HBM 라인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이죠.
취재를 종합해보면 올해 SK하이닉스는 HBM 라인 생산 능력을 월 10만 장 이상으로 올린다고 하는데요. 2022년에서 2023년 1년 간 HBM 생산 능력을 2배를 올렸고, 올해 지난해 대비 또 2배를 올린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현재 최소 5만 장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곳. 'M15X'죠. 지난 2022년 SK하이닉스는 M15 옆에 M15X라는 확장 팹을 건설하기로 했는데요. 발표 당시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는데 이 공장이 새롭게 지어질 경우 어떻게 활용할 것일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주의 메인 역할이었던 낸드플래시 라인이 들어설까, 바로 옆 공장이 HBM 라인으로 쓰이는 만큼 신규 HBM 라인으로 부상하게 될까. SK하이닉스의 선택이 기대됩니다.
■잠자고 있는 낸드는 조금 더 기다려봅시다
SK하이닉스의 고민은 낸드플래시입니다. 참 시장이 살아나지 않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외에도 마이크론, 일본 기옥시아, 미국 웨스턴디지털, 중국 YMTC까지 세계 방방곡곡에 경쟁자가 있어 물량을 독차지하거나 가격을 방어하는 작업이 너무 어렵고요.
AI나 XR용 엣지 디바이스 특수 D램,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차량용 D램 등 4차 산업 혁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필요한 D램에 비해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는 적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큰 폭으로 넓어지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D램은 나아지고 있지만, 낸드 쪽은 아직 거의 잠자는 수준"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죠.
실제 SK하이닉스의 경우 올 상반기까지는 대폭 생산량을 줄여왔던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요. 연간 낸드플래시 설비 투자 예산을 크게 잡아놓지 않은 것으로도 파악됩니다. SK하이닉스의 전체 웨이퍼 장비 예산 가운데 약 15% 내외만을 낸드플래시에 투입할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이달 열린 CES 2024 행사에서 낸드 사업의 경우 올 2~3분기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변화를 모색해보겠다고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반적인 SK하이닉스의 올해 농사 계획을 살펴봤는데요. △D램 1분기 감산폭 완화와 1a·1b D램 공정 전환 △HBM 신규 라인 증설 △잠자고 있는 낸드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글을 맺기 전에 SK하이닉스라는 회사 조금 더 재밌게 관찰하는 방법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SK하이닉스가 요즘 HBM으로 조명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것 하나만 말고요. 모바일·서버·신규 영역의 길목마다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봅시다.
예를 들면 서버 분야에서는 최고 용량 128GB DDR5 D램의 경우 SK하이닉스가 독보적 리더십을 자랑하며 고객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고요. 모바일용 LPDDR5X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LPDDR5T’도 업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해 요즘 다시 호황세로 돌입한 중국 모바일 시장에 적극적으로 공급을 시작했죠.
신비한 엣지 디바이스에 맞는 신기한 맞춤형 D램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올해 양산품이 나오는 애플 XR 기기 '비전 프로'에도 그래픽 연산을 보조하는 독특한 커스텀 D램 납품하는 데 성공했죠.
다양한 ‘스페셜티 메모리’로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SK하이닉스. 목표대로 3년 내 시총 200조 원 달성에 가닿을 수 있을지, 올해 농사는 계획대로 잘 지을 수 있을지 ‘이천 쌀집’의 활약을 함께 지켜봅시다.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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