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연 3.50%로 긴축 수준을 유지한 지 1년이 지났으나 시중 통화량은 오히려 6개월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가 사실상 통화 발행과 다름없는 한국은행의 일시 대출금을 역대 최대 규모로 사용하면서 통화량이 증가하자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광의통화량(M2) 잔액이 3894조 9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35조 3000억 원(0.9%)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1년 11월(52조 7000억 원) 이후 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코로나19 저금리 기간에 큰 폭으로 늘던 M2는 한은의 금리 인상 이후 감소했다가 지난해 6월 다시 증가 전환해 6개월 연속 늘고 있다.
M2는 시중 통화량을 보여주는 지표로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 입출금식 예금(이상 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양도성예금증서(CD) 및 환매조건부채권(RP)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 상품을 포함한다.
지난해 11월 M2가 늘어난 것은 예금금리 상승 등으로 정기 예적금에 돈이 쏠리는 가운데 단기자금 시장을 중심으로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수익증권과 MMF가 각각 8조 8000억 원, 7조 원 증가했다. 정기 예적금은 금리 상승과 함께 은행의 법인 자금 유치 노력 등으로 6조 1000억 원 늘었다.
긴축 수준의 기준금리를 1년째 유지하는데도 통화량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특례보금자리론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다시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계대출은 37조 원 늘면서 2022년(-2조 6000억 원) 대비 증가 전환했다.
정부가 재정증권 발행보다는 한은 일시대출금을 기조적 부족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통화량이 증가한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은 일시대출금은 통화 발행과 같은 효과를 낸다. 지난해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빌려 쓴 일시대출금은 117조 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이자만 1506억 원이 발생했다. 결국 금융통화위원회가 일시대출 부대 조건을 강화하면서 제동을 건 상태다.
다만 한은은 증가율 자체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금융상황지수(FCI) 등 가격 지표 등을 보면 현재 금융 상황이 긴축적이라는 평가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량 증가율만으로 금융 상황의 긴축이나 완화 정도를 평가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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