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코스피·코스닥지수를 다시 한 번 끌어내린 주체는 1조 원어치 이상의 물량을 쏟아낸 외국인투자가들이었다. 잇단 대외 악재로 주가지수 자체가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대다수 업종이 부진의 늪에 빠졌고 개인투자자들은 상승 가능성이 불투명한 테마주에만 매수세를 집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9055억 원, 코스닥시장에서 1771억 원 등 총 1조 827억 원 규모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외국인은 대북 안보 리스크 등 대외 변수가 부각한 12일부터 국내 증시에서 매도 우위로 돌아선 뒤 이날까지 매도 폭을 계속 키웠다.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이달 12~17일 4거래일간 순매도한 금액만 1조 3510억 원에 달한다. 외국인은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도 3455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날 외국인의 매도 폭탄은 대형주에 집중됐다. 외국인은 삼성전자(005930)를 2580억 원어치 판 것을 비롯해 LG화학(940억 원), SK하이닉스(000660)(820억 원), 오리온(271560)(489억 원), 삼성SDI(006400)(417억 원), LG전자(318억 원) 등도 대거 처분했다. 업종별로도 통신업(0.19%)을 제외한 모든 업종이 하락세를 보였다. 화학과 철강·금속이 나란히 3.45%씩 떨어져 특히 내림 폭이 컸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줄줄이 쓰러졌다. 시총 1위인 삼성전자가 전일 대비 2.20% 하락한 것을 포함해 2위인 SK하이닉스(-0.83%), 셀트리온(068270)(-5.07%),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4.23%), 네이버(NAVER(035420)·-4.78%), LG에너지솔루션(373220)(-2.62%) 등도 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하락한 종목 수는 852개로 상승 종목 수인 72개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코스피와 코스닥 거래 대금은 각각 11조 162억 원, 8조 9528억 원으로 집계됐다.
투자 전문가들은 이날 외국인이 대량 매도에 나선 배경으로 글로벌 금리 인하 기대가 재차 약화된 점을 꼽았다. 크리스토퍼 윌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가 16일(현지 시간) “연내 금리 인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책 변화를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증시에 전반적인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발언으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같은 날 장중 103.88까지 오르면서 한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 중동 정세가 계속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우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북 안보 리스크까지 떠안게 된 점이 부담 요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중국 부동산 관련 투자 지표가 악화한 점도 신흥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했다고 지목했다. 이날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중국 부동산 개발 투자액이 전년 대비 9.6% 줄어든 11조 913억 위안(약 2060조 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삼성전자·LG전자·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상장사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잇따라 시장 기대치를 밑돈 점도 외국인 수급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환시장 변수, 실적 불안 등이 외국인 수급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2월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월간 기준으로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과 달리 개인들은 최근의 증시 부진을 적극적으로 저가 매수 기회로 삼고 나섰다. 개인들은 이날도 코스피·코스닥시장에서 총 1조 245억 원을 순매수했다.
개인들은 나아가 ‘빚투(빚 내서 투자)’까지 늘리면서 주식을 매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6일 신용거래 융자잔액은 18조 3814억 원을 기록해 올 들어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직후인 2023년 11월 6일(16조 5767억 원)과 비교하면 2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개인들이 최근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종목은 주로 테마주로 드러났다. 거래소에 따르면 한글과컴퓨터(030520)(8.77%), 우진(105840)(7.70%), 써니전자(004770)(7.35%) 등 인공지능(AI) 및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테마주가 신용 융자잔액 비중 상위 리스트를 채웠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예상보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 시점이 지연되면서 투자자들이 단타성 매매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테마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빚까지 내 테마주에 투자하는 것은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 방식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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