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수소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자 사업 전면 재검토에 돌입했다. 수소 관련 사업 부서를 하위 조직으로 격하하는 한편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도 대부분 중단했다. 가스공사는 이들 사업에 대한 경제성 재평가를 시행한 뒤 국내 수소차 보급 속도에 맞춰 인프라를 구축하는 형태로 속도 조절에 나설 계획이다.
23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새해 수소·신사업본부를 수소·신사업단으로 격하시키고 해외사업단을 해외사업본부로 격상시키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신설된 수소사업본부와 신사업본부는 지난해 수소·신사업본부로 통폐합된 데 이어 올해 아예 본부 지위를 잃은 것이다. 가스공사는 현재 7본부, 26처(단·원·실), 14사업소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소 관련 업무를 맡던 임직원도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됐다.
이번 사업 개편은 2022년 임명된 최연혜 사장의 의지가 담긴 작업으로 평가된다. 최 사장의 전임자인 채희봉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맡는 등 ‘수소경제 활성화’의 주축이었다. 채 전 사장은 2021년 가스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뒤 2030년까지 수소 분야에 총 4조 7000억 원을 투자해 수소생산기지 25개소, 수소공급배관 700㎞, 수소충전소 152개소를 구축한다는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다.
가스공사는 이후 광주·창원·평택에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3기를 만들고 김해·대구에 직영 수소충전소 2곳을 설치했다. 수소인프라 건설 사업에 투입된 돈만 1356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수소차 보급이 이에 따라오지 않아 수소충전소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대다수 수소생산기지가 수요처 미확보와 수요 부족으로 인해 가동조차 되지 않았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거점형 생산기지를 돌리려면 설비 가동률이 30%를 웃돌아야 하지만 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스공사가 이처럼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낙관적 전망을 그대로 맹신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스공사는 자체 감사를 통해 “지자체가 낙관적으로 추정한 수소차 보급 계획을 보수적 검증 없이 그대로 경제성 평가에 반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가스공사는 이에 수요예측과 관련해 업무 태만 등의 책임을 물어 관련자에게 징계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또 수소인프라 구축 사업 등과 관련 자산에 대한 손상 평가 작업에도 착수했다.
가스공사의 이 같은 수소 사업 투자 손실은 재무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가스공사의 누적 미수금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5조 원에 달한다. 가스공사는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요금 인상 자제 방침에 따라 연료비 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채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2022년 4월 이래 MJ(메가줄)당 6.54원을 인상하는 데 그쳤다. 원가보상률은 78%로 여전히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고 있다.
가스공사는 당분간 수소 분야에 대한 투자를 보수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스공사는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23~2027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통해 올해 수소·신사업에 299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해외 현지법인을 활용한 청정수소 사업 계획’을 전면 보류한 지난해 투자액(697억 원)의 43% 수준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직 효율화 차원에서 업무를 재조정했다”며 “효율적인 방안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