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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기업인들… "30년 뒤면 韓 기업 모두 공중분해" [biz-플러스]

한경협, 공익법인 규제개선 호소

상속세 무거운데 공익법인 활용도 어려워

삼성-넥슨 등 지배구조 휘청

"규제 풀어 합리적 승계 도와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낡은 공익법인 규제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나 메타(옛 페이스북)와 같은 선도기업의 탄생을 막고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공익법인 법제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상속세에 공익재단 활용도 사실상 불가능해 우리 기업들이 20~30년 뒤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한경협은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상속 및 증여세법이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 상증세법은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에는 계열사 주식을 5% 이상 취득할 경우 반드시 증여세를 물도록 강제하고 있다. 지분율 20~50%까지 한 푼도 세금을 물리지 않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지나치게 가혹한 세금 체계다. 공익법인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 역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적용하는 규제다. 특히 국내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중소·중견기업 역시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60%)에 이어 공익법인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의 정상적 승계가 사실상 차단되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만 해도 이재용 회장 다음 대에는 기업 상속이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무거운 상속세가 기업가치의 상승을 막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공익법인의 규제 개선 검토작업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기업 승계를 막는 과도한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이와 별도로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정부 내부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속세율을 낮추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거의 매년 벌어지는 선거와 국민 감정 등을 고려하면 국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며 “기업 승계와 관련된 공익법인 규제를 완화하되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건자재업을 하는 중견기업 A사는 공익법인과 관련한 세법 및 공정거래법 규제가 조금이라도 완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제도하에서는 막대한 세금 부담 때문에 사실상 기업 존속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29일 “규제만 완화되면 당장이라도 공익법인을 세우고 싶지만 정부와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속세법 개정이 정공법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현재 분위기에서 통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면서 “공익법인 규제라도 완화되기를 기다리는 곳이 제 주변에 많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부닥친 현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상속세와 공익법인 관련 규제는 그동안 ‘금단의 영역’에 가까웠다. 과거 국내 기업들의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정경 유착과 여기서 비롯된 반기업 정서 때문에 누구나 그 문제를 알면서도 막상 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공론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주식을 물납처분하기로 한 넥슨 본사 전경. 연합뉴스


문제는 기업 승계를 사실상 제한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킬러 규제’를 몇 십 년 동안 방치한 사이 기업과 자본시장에는 커다란 시장 왜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 가족은 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상속세를 부담할 수 없어 지주사인 NXC 지분 29.29%(4조 7000억 원)를 내놓았지만 비상장 주식인 데다 배당도 어려워 입찰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유산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들은 12조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 등 보유 재산을 블록딜로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최대 연 6%에 육박하는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견·중소기업들 중에는 상속세 때문에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곳도 적지 않다. 국내 가구 업계 1위인 한샘이 경영권을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넘겼고 동진섬유·농우바이오·락앤락·에이블씨앤씨 등도 끝내 기업을 포기했다. 아예 해외로 짐을 싸는 기업도 늘고 있다. 중견기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년 전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중견기업이 승계 문제로 재단법인을 활용한 기업 승계를 검토했지만 현행법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본사를 홍콩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기업 승계 문제를 단순히 대기업 ‘특혜’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업 승계를 일종의 악(惡)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지만 삼성이 상속세 때문에 해체되고 주식이 물납으로 나와 경매나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면 그때는 한국에 더 큰 경제적 재앙이 닥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발렌베리재단 지배구조


그렇다고 미국이나 일본·스웨덴처럼 공익법인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해 규제 범벅이 된 현행 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 관련 규제는 공정거래법·세법 등으로 얽혀 있어 풀어내기 어려운 상태다.

최승재 세종대 법대 교수는 “미국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옛 페이스북)·포드처럼 공익재단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기업을 영속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집단들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특히 공익법인의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MS 주식을 출연해 자선 재단을 설립한 뒤 이 재단을 통해 전 세계적인 사회문제 개선에 공헌하고 있으며 마크 저커버그 메타 회장 또한 첸 저커버그 재단을 통해 메타의 의결권 53.7%를 행사하면서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공익재단의 계열사 주식 취득 때 최대 지분율 20%까지 면세 혜택을 주고 있으며 일본은 면세 지분율 한도가 50%에 이른다. 공익재단을 통해 미래 투자와 기업의 영속성, 세금 문제 등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창업자의 기업 지배권을 인정한 대신 사회적 고용과 복지 확충을 맞바꾼 스웨덴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웨덴은 1938년 일명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기업집단의 총수가 상속세 없이 공익 재단에 출연할 수 있도록 허용해 경영권 승계를 보장했다. 대신 해당 기업집단은 배당 수익의 80% 이상을 과학기술 및 의료·대학 등 사회 환원 사업에 투자하고 나머지 20%가량을 계열사에 재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스웨덴 발렌베리재단은 제약 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통신 장비 기업인 에릭손 등을 거느리면서 스웨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 규제는 전면 폐지하고 주식 취득 면세 한도 역시 최소한 미국 수준인 20%까지 높여야 한다”면서 “국내 기업들의 정상적 승계를 도와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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