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중국 BOE가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을 추격하는 가운데 중국 스마트폰 내수 수요가 대폭 증가하며 패널 출하량이 확대된 결과다.
30일 시장조사 업체 DSCC에 따르면 폴더블 OLED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76%에서 36%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BOE의 점유율은 18%에서 42%로 늘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폴더블 OLED 시장에서 1위를 내준 것은 2019년 3분기 폴더블 디스플레이 시장을 연 후 5년 만이다. 2021년 1분기까지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시장에서 유일한 폴더블 OLED 공급자였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BOE의 폴더블 OLED 점유율은 5% 미만에 그쳤지만 1년 만에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삼성전자(005930)가 지난해 하반기에 타이트한 패널 재고 수급 정책을 고수하는 동안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내수 호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패널 재고를 축적했다. 중국 화웨이의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4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80%가량 급증했다. 이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의 패널 출하량(4분기)은 전 분기 대비 80% 감소한 반면 BOE 물량은 68% 증가했다.
앞으로도 폴더블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을 독점하는 구도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는 폴더블 스마트폰 ‘메이트 X5’ 인기와 올해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를 근거로 지난해 260만 대 수준이던 폴더블 출하량 전망치를 올해 최대 1000만 대까지 늘렸다. 아너와 오포 등 BOE가 패널을 공급하는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도 폴더블 신제품을 대거 내놨다. 이동욱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중국 패널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신시장 개척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차별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OE, 화웨이·오포 등 납품 증가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중국 BOE의 점유율 추격은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수익성이 낮은 저가 제품뿐 아니라 한국 업체들이 기술 우위를 통해 신시장을 개척하고 규모를 키워간 분야조차 막대한 자본과 수요를 기반으로 한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OLED 패널의 가장 큰 수요처인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기에 도래하자 위기감은 더욱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LG디스플레이(034220)가 스마트폰 패널을 공급할 수 있는 잠재 고객사가 삼성전자와 애플 정도로 한정돼 신제품이 나온다고 해도 출하량을 극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화웨이와 아너·오포 등 다양한 내수 완제품(세트) 업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어 이 업체들 중 하나의 제품만 흥행한다고 해도 효과적으로 물량을 늘릴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폴더블 패널 시장에서 BOE가 삼성디스플레이를 추월한 것도 화웨이가 폴더블 제품 ‘메이트 X5’ 흥행을 기반으로 판매량을 전년 대비 80%가량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스플레이 전문 시장조사 업체 유비리서치의 이충훈 대표는 “중국의 여러 스마트폰 업체에서 폴더블 스마트폰 신제품을 동시에 내놓았다”며 “구조적으로 한국 출하량 점유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OLED, 내년 점유율 韓 45% vs 中 55%
유비리서치는 지난해 한국의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 점유율이 57.6%에서 올해 53%, 2025년에는 45.2%로 서서히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시기 중국의 점유율은 42.4%에서 47%, 54.8%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2025년에는 중국이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을 추월하는 셈이다. BOE가 한정된 수량이기는 하지만 프리미엄 OLED 패널의 최대 고객인 애플 공급망에도 진입한 상황이라 국내 업체들의 물량을 잠식할 가능성도 언제든지 열려 있다.
열세인 기술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은 인력 탈취와 기술 도용에도 거리낌이 없다. 지난해 11월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톱텍 임직원 11명이 스마트폰 화면 모서리를 곡면 형태(엣지 패널)로 구현하는 삼성디스플레이 독자 기술 ‘3D 래미네이션’을 유출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BOE와 BOE의 자회사 등 8개 회사를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대규모 투자를 통한 외형 성장도 꾀하고 있다. BOE는 지난해 11월 쓰촨성 청두에 8.6세대 OLED 생산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1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8.6세대 OLED 생산에 투자하는 4조 1000억 원보다 2.5배가량 많다. 중국의 2위 패널 업체인 CSOT 역시 태블릿·노트북 등 정보기술(IT) 기기 시장을 겨낭해 올해 하반기 잉크젯프린팅 OLED 패널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에 이어 국내 기업들이 압도적인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시장에 또다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위기의 디스플레이…삼성·LG, XR·전장 투자로 대응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이미 중국 업체들이 주류를 차지한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OLED 시장에서는 수율·품질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기술 격차도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5년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2010년대 중후반 LCD 시장에서 겪은 시장 잠식이 반복된다면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BOE의 전 수장 왕둥성 회장이 주장한 ‘왕의 법칙’은 국내 업체들을 압박하는 중국 업체의 전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왕의 법칙은 패널 가격이 3년 주기로 50%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제품에 비해 두 배 이상 성능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최대 강점을 대량 양산을 통한 ‘가격경쟁력’으로 꼽은 셈이다.
국내 기업들도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분야는 차량용과 확장현실(XR) OLED다.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를 2019년 양산한 이후 4년 만에 완성차 브랜드 10개를 고객사로 확보했고 삼성디스플레이도 BMW·페라리 등에 차량용 OLED를 납품했다. XR 분야에서는 양 사 모두 실리콘웨이퍼를 사용해 전력 소모가 낮고 가벼운 ‘올레도스(OLEDoS)’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미국의 XR 패널 기업인 이매진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은 “세제 지원뿐 아니라 특허침해에 대한 강력한 대응 등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XR 기기에 쓰일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인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등을 빠르게 연구개발해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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