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모태펀드 운용 규모를 1조 원 수준으로 대폭 늘린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벤처 펀드에 출자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지원 수단이다. 정부가 전폭적으로 초기 창업기업 지원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스타트업이 경제 성장과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 장기 수익률이 10%를 상회할 정도로 높게 나타나도 있는 점도 모태펀드 규모 확대의 배경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달 31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개최한 ‘모태펀드 출자 사업 업계 간담회’에서 지난해 6640억 원이었던 모태펀드 출자 규모를 올해 91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모태펀드 본예산 4540억 원에 과거 투자금을 회수하며 생긴 재원 4560억 원을 더한 것으로 1조 원에 육박하는 운용 자산이 생겼다. 오기웅 중기부 차관은 이날 “올해 모태펀드 출자 규모를 본예산의 2배 수준으로 설정했다”며 “1분기에 전액 출자 사업을 진행해 벤처 투자 조기 회복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벤처·스타트업 3만 3000곳…고용 인원 74.6만 명
정부가 스타트업 투자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그만큼 초기 창업기업이 우리 경제 성장과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기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국내 벤처·스타트업 3만 3000곳이 고용한 인원은 74만 6000명이었다. 같은 기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직접 고용한 69만 6000명보다 많다.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기 창업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범부처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을 내놓고 2027년까지 한국을 ‘세계 3대 창업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스타트업 투자는 장기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2021년 말을 기준으로 모태펀드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15.4%에 달한다. 일반적인 증권 상품 수익률보다 높다. 리스크가 높은 투자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업종과 기업별로 적절히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면 장기 수익률은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표는 “모태펀드 수익률이 10%를 넘는데 이는 벤처 투자가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안정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해 고용을 늘리는 사회적 가치 창출 효과에 더해 높은 수익률로 정부 재원을 장기적으로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작년 벤처 투자 20%↓ …정부가 마중물 대고 회수시장 살려야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최근 발표한 ‘벤처캐피털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기부 소관 벤처투자조합 투자 규모는 5조 397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6조 7640억원 대비 20.2% 줄었다.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결정적인 요인은 글로벌 고금리에 있지만 IPO 시장 불황 등 다른 요인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7~10년 동안 벤처펀드를 운영하는 벤처캐피털(VC)은 펀드 만기가 도래하기 전 투자 기업이 상장해야 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파두 사태 등으로 인해 IPO가 시장이 냉각되며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졌고, 이 같은 분위기에 신규 투자를 주저하는 VC가 많았다.
이에 중기부 주최 모태펀드 간담회에서는 벤처 투자 시장 회복을 주문하는 VC 대표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DSC인베스트먼트, 하나벤처스, 스틱벤처스 등 업계를 대표하는 VC가 다수 집결한 가운데 벤처 펀드 운용을 책임지는 대표들은 △IPO 등 회수 시장 활성화 △'세컨더리 펀드' 출자 확대 등 실질적인 해결책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근호 스틱벤처스 대표는 "지난해 말 소위 ‘파두 사태’로 기술특례상장이 어려워진 것을 느끼고 있다”며 “어렵지 않게 기술평가를 통과했을 우수 기업, 기술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벤처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원인 중 하나는 IPO 시장 급랭으로 투자 회수가 어려워진 것”이라며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한 투자 자금 회수가 용이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컨더리 펀드(다른 금융 기관 보유 구주를 인수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벤처 펀드) 활성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은 “만약 IPO 시장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 세컨더리 펀드(다른 금융 기관 보유 구주를 인수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벤처 펀드)라도 활성화해야 한다”며 “올해 모태펀드 일부분을 세컨더리 펀드에 적극 출자해 회수 시장을 우회적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오 차관은 “정부는 LP(출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VC가 많아 벤처 펀드 결성이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모태펀드 규모를 늘리고 상반기 내에 적극적으로 집행해 어려운 시장 상황을 개선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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